::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무한한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는 무한한 가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 가는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째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손에 있는 것을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고 우리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손에는 세상의 좋은 것들이 많이 들려져 있습니다. 이것들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입니다. 우리들의 손에 세상 것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없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으면 빈손이 되는데, 손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손에 거머쥘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째로  비유의 요점, 핵심은 하늘나라는 대단히 가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있습니다.  44절과 46절의 같은 반복 문구인 후렴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자기의 가진 재산을 하나님 나라를 획득하는데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 모든 것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말씀을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나요?

쌍둥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받으면 됩니다. 6:3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하시리라.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슨 일보다 선행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라는 말입니까? 우리 주님께 두라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 주님이 주신 모든 세상 것들을 누리면서 살되, 삶의 원칙은 언제나 우리 주님에게 우선을 두고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주님 때문에 물질을 포기할 때도 있고, 주님 때문에 명예도 포기하기도 하고, 주님 때문에 자식도 포기하기도 하고, 주님 때문에 몸도 포기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주님 때문에 목숨도 포기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 나라에 두지 않으면 결코 이런 자기 희생이 일어날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인생의 최우선이 있을까요?  교회가 하는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면 될까요? 아니면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면 될까요? 물론 교육에 의하여서도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더욱 근본적으로 확실하고 철저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우리 주님이 하시는 성령 세례를 받으면 됩니다. 성령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하게 되면 삶의 우선 순위가 자연히 바뀌게 됩니다.  


켐연장

2017.08.01 07:14:00

주일예배/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730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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