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91

일시:9/8/2017 

대표기도:이준상 집사 

찬송가: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2절:찬송할 수 없고) 


1.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에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나병 환자의 치유 경험을 통하여 기도는 주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육신적인 소원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의 소원이 들어 왔습니다. 그 소원이 불일 듯 하듯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소원을 붙들고 기도하면 됩니다. 내가 그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었고, 새로운 소원과 비전을 주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전 에너지를 그것을 이루어 가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부를 그것을 이루어 가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일이라고 지난 주에 말씀 드렸습니다. 


2. 기도는 나의 쓸 것,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데 있습니다. 내게 필요한 일이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다면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하면 이루어 집니다. 예를 들면 돈이 없다. 일할 능력이 있으면 일해서 돈을 벌면 됩니다. 기도한다고 돈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을 때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쓸 것,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속된 말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서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빌4:19절<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 글에서 했던 말입니다. 너희 모든 쓸 것/ 쓸 것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삶을 살아 가면서 발생하는 궁핍, 필요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에는 영적인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궁핍함을 느끼면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육신적인 필요를 위하여 돈도 필요하고 영적인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하고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살아 갈 때에 마땅히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욕심 가운데 나옵니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딱 하루 하루 필요한 것, 그것만 일생 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면 일생이 불편이나 고생 없이 마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욕심입니다. 기도할 때도 필요 그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을 명백히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때에 쫀쫀하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풍성함 가운데서 주십니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약1:3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무언가를 윗사람에게 타내고자 하면 야단을 실컷 먹고 얻어 낼 때가 많습니다. 옛 시대의 우리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서도 꼭 한 소리를 한 다음에 자식에게 주거든요.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구하는 우리에게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신다고 했는데, 지혜 대신에 돈을 넣어서 기도해도 되고, 건강을 넣어도 되고요:너희 중에 누구든지 돈이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건강을 넣어 볼까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건강이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갈 수 있겠지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넉넉하게 풍성하게 후하게 주십니다. 


에베소서 3:20절<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하나님이 어떤 분인가가 묘사 되어 있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하고 요청할 때에 그것을 더욱 넘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따라서 말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위하여 이러한 것이 필요한데 라면서 생각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 하나님은 그것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풍성한 기도 응답은 하나님이 내 안에 부어 주신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크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능력이 적으면 적은 기도 응답이 있을 것이고 이 능력이 크면 클수록 큰 기도 응답이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금요 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이유는 이 큰 성령의 능력을 더욱 받기 위하여 기도하러 나온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 하나님은 한량없이 넘치도록, 폭포수처럼 우리에게 부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요즈음은 이런 기도가 가끔씩 나옵니다. 예전은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드리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우리 소유의 교회 건물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전에는 어디면 어떻겠냐 하면서 미국 교회 예배당을 빌려 쓰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배당을 돈 들여서 세워놓는 것보다는 사람을 키워서 세우는 일이 더욱 값지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예배당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있는 이 루터란 교회건물을 share하는 것으로도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규모가 커지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배당을 빌려 쓰다 보니 주일 오전은 거의 쓸 수가 없어서 교회 모든 사역이 주일날 오후 2-6시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토요일날은 안식교가 교회 건물을 사용하니 건물 사용이 제약을 받아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배도 교육도 행사도 교회 회의도 모두 그 시간 대 이기에 교회의 방이 부족하고, 사역이 겹쳐서 여간 난감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건물이 필요하기는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성령께서 가끔씩 내 마음을 감동시키시면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재정적인 여건을 보면 교회 건물을 가질 수 없는 여건이지요. 20년동안 현재 약 10만불 정도 교회 건축 재정이 헌금으로 적립되어 있습니다. 건축 헌금을 드리라고 강요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드린 헌금이지요. 이것은 그야 말로 교회 건물을 세우는 데는 새 발의 피지요. 교회 건물을 갖자면 적어도 수 백만 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발적인 건축 헌금이 모인다면 교회 건물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족히 2-3만년이 만약 통화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4-5만년 정도 걸릴 지도 모릅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교회 건물을 주셔도 현재 우리 교회의 재정 능력으로는 그 건물을 유지 보수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온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겠지요. 그렇게 되면 지금 모여 있는 건축 헌금 10만불은 seed money가 되어서 빛을 발하겠지요. 아뭏튼 예배나 교육이나 선교나 이런 교회 활동이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하여 점점 더 우리 자체 건물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지금은 액션을 취할 때가 아니고 기도만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와 궁핍을 아시고 채우시면 한 순간에라도 이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부자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님을 우리는 알 뿐입니다. 때가 되면 주께서 그 일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의 필요를 우리 주님의 풍성한 가운데 채우신다고 했는데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우리 주님이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니 무엇이나 풍성하게 주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했던 일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와 유럽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빌립보 교회가 선교 헌금을 모아서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불렀고,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라고 평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기도 응답이 있지요. 하나님을 근심스럽게 만들고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지요. 바울은 이런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빌4;14절에서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 하였으니 잘 하였도다’하면서 칭찬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 사역에 선교 헌금을 보낼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주께 행하고 있는 삶을 먼저 찾아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겠는가를 먼저 살펴 보고 그 후에 확신이 들거든 우리의 필요를 힘 다하여 요청합시다. 당신은 지금 어떤 궁핍함 가운데 있습니까? 당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가져 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요일3:22절<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하는 기도가 응답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명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고서 기도한다면 분명히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죄는 아니나 하나님 마음을 거슬리게 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지은 죄를 모두 자복하고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해 집니다. 이런 담대함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도 처다 보지도 못하고 쭈빗쭈빗 거리면서 기도해 보았자 시간 낭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담대해졌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행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또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을 찾아서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아이가 시장 보고 올 테니 숙제 모두 마쳐 놓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숙제도 마쳐 놓고 자기 방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해 놓았다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엄마가 기쁘게 해 주겠지요. 만약에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고 숙제도 안 해 놓고, 자기 방 벽에 낙서 해 놓았다면 원하는 것은 커녕 매 타작 당할 것입니다. 


고후5:9절<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기쁨조!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면 못 이룰 일이 없다. 당신은 늘 어떤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사는가? 아니지 않은가? 남편을 기쁘게 할 까? 아내를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자식을 기쁘게 만들까 이런 고민과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지 않던가? 마음의 자리, 마음의 토양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가 마음에 자리 잡히기를 바랍니다. 


3. 기도는 간구다:supplications!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4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ACTS: 찬양, 죄고백, 감사,간구(탄원). 기도의 포칼 포인트는 무어니 해도 간구 즉 supplication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아 내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찬양과 죄고백과 감사는 모두 간구를 위한 준비 단계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죄고백은 죄용서의 청구가 아니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자백하고 시인하는 일이지요. 하나님 내가 도둑질 했습니다. 이것은 죄 고백입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의 것을 탐내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죄 고백입니다. 그러니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할 때에 이 문구는 간구에 속하지요. 온갖 종류의 간구가 있을 수 있지요. 영적인 것에서부터 자질구레한 육신적인 일들까지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기도 내용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추게 한 일이라든지, 아니면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게 했던 간구나 또는 비 내려 달라는 간구등과 같은 큰 일도 있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유하기도 하고, 잃어 버린 물건을 찾는 것을 구하기도 하고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이 점을 명확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눅 18:10-14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하지요: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심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사회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또 종교적으로는 금식과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린다고 자랑했습니다. 종교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철저하게 업적과 공로를 쌓고 있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이야기 했습니다. 그 반면에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자기는 죄인이기에 하늘을 처다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통회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간구합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입니다. 분명한 요청이지요.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기도를 하나님이 가납했습니까?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입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내 놓을 종교적인 업적도 선행도 없습니다. 또한 사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도 바르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와서 죄사함을 위한 요청을 했을 때에 하나님이 들었고, 바리새인이 아니라 바로 이 세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기도의 분명한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간구가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간구가 없습니다. 그냥 자기 자랑만 너스레 떨다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어떻습니까? 마음을 쏟아서 간구했습니다. 기도에서는 분명하게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소원을 품고 하나님께 나가서 분명한 말로 소원을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가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말로 이야기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말하기 전에 미리 우리가 그것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분명한 말로 하나님께 요청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 위에서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자기를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히11:6절<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가지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믿어야 하는데, 무엇을 말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살아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상 주시는 분, 즉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주어서 기쁘고, 우리는 받아서 기쁘고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간구를 많이 해야 겠지요. 우리 하나님, 제게는 이것도 필요하고요, 하나님, 제게는 저 것도 필요합니다. 주세요! 하나님 내 궁핍함을 아시지요. 내 필요를 채워 주시지요!


켐연장

2017.10.11 07:10:47

2017년 09월 08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908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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