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92

일시:9/15/2017 

선교기도: 찬송가: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기도는 기도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하는 방편이다.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을 닮아 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라고 말할 수 있지요. 불제자들은 참선을 통하여 부처님이 됩니다. 화두를 가지고 사색과 명상을 하다가 각자 즉 부다가 됩니다. 생.노병사의 사이클을 벗어나서 해탈을 하게 되지요. 가부좌 틀고 앉아서 집중하면서 사색하지요. 이것을 참선이라고 부르지요. 불교는 종교라고 보기보다는 일종의 철학 정도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 철학사상에 샤마니즘이 덧대어져서 불교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는 초월 명상 TM이라고 부르지요. Transcendental Meditation! 이 방법을 통하여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절대 자아, 초 자아를 찾아 가는 것이지요. 초월 명상은 한 음절이나 두 음절로 되어 있는 만투라를 반복하면서 의식을 단순화 함으로써 자기의 깊은 내면 의식 세계로 들어가지요. 명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의식 세계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절대 자아를 만나게 되는 방법이지요. 


반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합니까? 물론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주께 기도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 밖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닮아 가는데 있습니다. 내 밖에 살아 계시는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욥이 욥기19:26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내가 육체 밖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내 육체 밖에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나요? 예수를 통하여 만날 수 있지요. 마호메트를 통하여 만나는 것이 아니고 공자를 통하여 만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라는 인물을 통하여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하나님이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을 때에 비로소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를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되지요. 성령 없이도 성경에 있는 예수를 지성으로 찾아서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성에만 살아 있는 예수말고요, 예수를 영과 영으로 만남이 있어야 우리 밖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조우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성령 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성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고 정의 됩니다. 예수도 있어야 하고, 성령도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나님의 실재, 하나님 체험이 일어나야 기도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체험 없이는 지성적인 기도 밖에는 드려 질 수 없습니다. 기도 안하는 것보다는 지성으로 라도 기도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그 지성적인 기도는 영의 기도와는 다릅니다. 


1. 기도는 리모트 콘트롤러이다. 

땅에서 드리는 우리의 간구가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께 도달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몇일 전에 났던 기사인데 토성까지 도착한 인공위성을 이제는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폭파한다고 하지요. 적어도 십 수년 전에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지요. 지구에서 토성까지 가는데 몇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인공위성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넣어서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께 보낸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우리의 말을 전파로 바꾸어 보내도 우리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자면137억년이 걸리겠지요.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에 관측 가능하지 않는 영역을 가정하면 137억년 보다는 훨씬 더 많이 걸리겠지요. 하나님이 우주 밖에 계시기에 말입니다. 말로 된 우리의 기도 제목이 우리 주님 귀에 들어가자면 우리의 두뇌로 셀 수가 없는 그런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린다면 우린 기도할 필요가 없겠네요. 우리는 이런 점에 대하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8:18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하늘에서는 매어져 있게 되어 질 것이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하늘에서는 풀리어져 있게 될 것이다. > 마태복음16:19절<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하늘에서는 매여져 있을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늘에서는 풀리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땅에 맺고 푸는 일은 무엇에 대한 상징입니까? 기도에 대한 상징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요? 맺고 풀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곧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응답이 어디에 있다고요? ‘하늘에’있습니다. 기도는 땅에서 인간이 하고 응답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하십니다. 


자 그런데 땅에서 맺고 푸는 일은 단순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한번 맺는 행동을 하고, 한 번 푸는 행동을 하면 하늘에서는 즉시로 맺고 풀리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맺고 푼다는 동사의 꼴은 완료 수동 분사형입니다. 내가 땅에서 기도하자 말자 하늘에서는 곧 바로 맺고 풀리어져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리모트 컨트롤이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로 화면이 바뀝니다. 옛날에는 화면을 바꾸자면 tv수상기 앞으로 나가서 체널을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요즈음은 모두 자동이라 리모트 콘트롤로 화면을 즉시로 바꿉니다. 기도는 리모트 컨드롤과 같습니다. 기도는 리모트콘트롤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달리 기도에 대하여 정의한다면…<기도는 대화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는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다. 기도는 조르는 것이다. 기도는 씨름하는 것이다. 기도는 마스터키다 etc> 우리가 땅에서 버튼을 누리면 하늘에서는 우리가 땅에서 원했던 결과가 곧바로 되어져 있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땅에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누려야 하는 특권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교회를 제외하고는 이런 특권을 우리 하나님이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신 권세이고 영광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말을 전파로 바꾸어서 하늘로 쏘았다면 그 음파를 하나님이 언제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땅에서 음파가 우주 끝까지 날아가는 시간이 최소 137억년이나 걸리지요.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즉시로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응답이 하늘에서 즉시로 나온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닌가요? 


구약의 경우! 다니엘에게 있었던 일! 

단9:23절<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가브리엘-인간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천사:다니엘이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결심하여서 기도 시작하던 그 날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오랜 기간 동안 금식 한 후에 비로소 응답 받은 것 아니지요. 금식하리라 결심하고 기도 시작 하던 첫 날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고 가브리엘을 다니엘에게 보내서 무엇을 보여 주었나요? 70이레의 환상을 보여 주었지요. 70이레 환상은 24절부터 기록되어 있지요. 해석하기 어려운 환상이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환상은 다니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고 구약의 백성 전체의 운명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니엘이 이런 응답을 받아낸 것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비전을 평소에 품고 기도하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지요. 늘 자신의 개인의 생사회복 문제에만 집중하고서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지지 않는 크고 원대한 비전이고 소망이지요. 


다니엘이 금식하고 기도하게 된 동기가 어디 있습니까? 단 9:2절 보면 다니엘이 주전 538(537)년에 서책을 하나 얻어서 읽게 됩니다. 그 책은 이미 오래 전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예언서입니다. 아마도 예레미야 25장이나 예레미야 29장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서에는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그치리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만에 마치고 포로들이 해방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된지 몇 년 만에 말입니까? 70년 만에 말입니다. 이 때가 바로 임박했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예언은 다니엘의 마음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고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결심을 하고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예언한 대로 곧 동족들을 포로에서 풀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니엘의 마음에 큰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지요. 그래서 결심하고 재를 덮어 쓰고 베옷을 입고 머고 마시는 것을 끊으면서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면서, 민족을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회복시켜 달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기도 시작한 첫날이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서 다니엘에게 기도가 응답 되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에서 회복뿐만 아니라 먼 미래에 주의 백성에게 일어날 일까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었습니다. 이런 응답을 받고 다니엘이 더 금식기도 했을까요? 안했을 것입니다. 금식을 풀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했을 것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금식기도 했는데, 그것이 금식기도 하는 중에 이루어 진다면 금식기도를 더 계속할 필요 없어지지요. 금식기도를 그치고 감사 찬양하면서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하면 됩니다. 


몇 해 전에 한국인의 밥상인가요, 최불암씨가 출연하는 tv프로에서 본적이 있었습니다. 강원도에 사시는 어떤 할머니 두 분이 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랫 동네와 윗 동네에 살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바람이 아래 쪽에서 위 쪽으로 세차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윗집 할머니가 셀폰으로 아랫집 할머니에게 점심을 해 먹으려고 하니 무우를 몇 개 가지고 오라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셀폰으로 무우 가져 오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동영상을 찍는 피디가 할머니 셀폰으로 왜 그렇게 고함을 치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올라오고 있어서 아랫집 할마 씨에게 목소리가 잘 전달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소리를 질렀다는 말입니다. 전파는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 그 윗집 할머니는 세찬 바람 때문에 셀폰으로 전달되는 소리가 잘 안 들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들이 한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런 유형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참 우수꽝 스럽지요. 오늘 말씀처럼 우리의 땅 위에서 기도는 즉각적으로 어떤 것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전달되고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드려 지는 기도를 듣고 응답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기도가 즉시로 그렇게 응답될 수가 있을까?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있는 우리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 아니던가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말이 임마누엘이지요. 마18:20절에는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저 하늘 우주 밖에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 가까이 계시는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으로 들어가게끔 만들어 주셨지요. 그래서 우리가 땅에서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 말 소리는 우리 주님 귀에 직발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수 억만년이 지나야 비로소 우리 주님 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입에서 기도의 말 소리가 나오면 곧 바로 우리 주님 귀에 들어갑니다. 기도는 무엇이라고 정의한다고요? 기도는 리모트 콘트롤러다! 하나님께서 내 손안에 그 권세를 쥐어 주셨습니다. 사용합시다.



켐연장

2017.10.11 07:10:08

2017년 09월 15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915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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