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요청에 “예”라고 대답을 하고서 불순종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리키신 첫째 아들은 누구일까요? 예수께서는 이 첫째 아들이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 계급들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라고 적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현실에는 누구를 지칭할까요? 이런 유형의 신자를 맏이타입의 신자라고 부르지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연약하여서 실천하지 못하는 성도의 모습이 바로 맏이 타잎의 성도이지요.

그러면 둘째 아들은 어떤 아들입니까?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요청이 있자 아버지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말자 곧 바로 no라고 대답하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비유 속에서 지칭하신 둘째 아들은 누구입니까? 그 당시에 소외되어 지내는 계층입니다. 예수께서는 비유에 등장하는 그 둘째 아들은 바로 세리와 창기들이라고 적용하셨습니다. 그 사회의 지배 계급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짓눌려 사는 무리들이 둘째 아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과연 둘째 아들이 하나님이 보시는 이상적인 아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설교 말씀의 제목이 셋째 아들입니다. 셋째 아들은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상적인 아들입니다. 셋째 아들은 어떤 아들일까요?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애야, 포도원에 일하러 가거라”라고 말했을 때에 “예, 아버지”라고 대답하고서 즉시, 곧 바로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간 아들이 셋째 아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작은 사명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셋째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라고 흔쾌히 대답한 다음에 즉시 힘 다하여서 일하는 성도가 셋째 아들입니다.

예수께서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켰고,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기를 가리켰지만, 셋째 아들들은 자기의 12제자들을 가리키셨을 것입니다. 그 첫 제자들을 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첫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예 주님, 그러나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주십시오 라고 대답했습니까? 아니면 노우, 주님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리고 나서 회개하고서 주님 뒤를 따랐나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우리 주님의 부름과 요청이 있자 그들은 즉각적으로, 곧 바로,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의 뒤를 따랐지요. 하나님의 구원사는 바로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당신의 한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사에 큰 역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켐연장

2017.11.07 05:44:42

2017년 11월 5일 주일예배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105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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