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07

일시:12/29/2017

선교기도:

찬송가:497 예수 넓은 사랑~

캄보디아 비전 트립-릴레이 중보기도!


1.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가 있는데, 배가 아픈 것은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린가 하면 가난해서 못 먹어서 허기진 배는 참을 수 있어도, 내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지는데, 그것은 참아 낼 수 없다는 말이지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됩니다. 밥이 없으면 물 마시면 되고요. 이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내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꼬여서 아픈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내적인 치유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이 잘 되고 성공했을 때에 함께 기뻐해 주는 그런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켐연장 교회는 이런 건강한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 대하여 이웃입니다. 이웃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하고, 이웃이 즐거워하면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몇 일이 지나면 새해가 되는데, 새해부터는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복을 하나님께 빌어 주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웃을 위하여 빌었던 복이 내 이웃에게 임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해야지요. 내가 빈 복이 이웃에게 임하는 것을 보면서 배가 아파진다면 정신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인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들의 이웃을 미워하니 당연히 이웃이 잘 되면 배가 꼬이고 아프겠지만, 그리스도인이기에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니 외식, 즉 위선적인 마음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지요. 


2. 시139:7-10<내가 하늘에 올라 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서 도망치려고 한다. 하나님의 눈길을 피하고자 합니다. 왜?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하나님의 눈길과 손길을 피하여 숨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기 위하여 잡으러 다니신다. 어떤 대학 교수의 경험:자신이 죽을 병에 들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마침 나비 한 마리가 자신의 병실에 날아 들어 왔는데, 그 나비는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유리창문에 막혀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보던 이 분이 손을 내밀어서 나비를 잡아서 밖으로 내 보내려는 시도를 했지만, 나비는 계속해서 그 손길을 피해서 날아 다녔습니다. 이 교수가 그런 나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비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얼마나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서 요리조리 도망을 쳤는지 말입니다. 그 교수는 그 나비처럼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잡혀 있었기에 도망자로서 한 평생을 살았음이 후회스러웠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시다. 이 길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요리조리 피하지 말고 새해에는 눈 한번 감고 하나님 손에 한번 잡혀 봅시다. 하나님 손에 잡히면 숨막혀 죽을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우리를 추적하면서 우리를 잡고자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2시 예배를 본당에서 드리는 데, 참새 한 마리가 본당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참새를 잡고자 여러 집사님들이 시도를 했지만 참새가 날개가 있어서 날아 다니니 어떻게 잡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예배 드리는 동안 창문에 자꾸 부딪히면서 예배 드리는 동안 영 집중이 안되었습니다. 예배가 마치고 난 후에 어떤 집사님이 그 참새를 잡았습니다. 참새가 한 시간 동안 사람의 손을 피하여 날아 다니다가 기운이 빠져서 잡혔습니다. 잡아서 밖으로 날려 보냈지요. 참새가 사람 손에 잡히는 순간 참새는 아마도 나는 죽었구나 했겠지만, 오히려 바깥 세상으로 훨훨 자유롭게 날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이번 주일날(1/1) 비전 청년부원들이 캄보디아로 비전트립을 떠납니다.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선교비도 넉넉하게 모였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선교비를 후원해주셔서 선교비는 넉넉하게 채워졌습니다. 이제는 기도 후원이 필요합니다. 특별하게 기도후원은 이들이 선교사역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 올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선교는 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선포되는 곳에는 선교 명령이 주어집니다. 예수의 부활이 선포 되는 문맥에는 명시적으로 선교하라는 명령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묵시적으로 나타나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내게 맡긴 위탁 수하물입니다. 딤전6:20절<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맡긴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말씀이 아닙니까? 고전4:1절<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말은 청지기라는 말입니다. 청지기는 복음의 보화를 맡은 자들입니다. 청지기는 다른 종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선교 할 때에 우리는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캄보디아로 떠나는 단기 선교 팀원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가야 하는가? 


첫 번째는 의무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선교의 당위성이라고 말합니다. 롬1:14<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아직까지도 믿지 않고 있는 이방인들을 바라 볼 때에 우리는 어떤 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여겼습니다. 타오른 지옥 불을 지피기 위하여는 땔감이 필요한데, 그 땔감이 바로 이방인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이렇게 무시하고 멸시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이 유대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도록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서 유대 공동체 안으로 들어 오는 것만 받아 주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유대교의 약점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선교지에 갈 필요가 없겠지요. 이방인들을 이렇게 경멸하는데,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나아 올 수 있겠습니까? 없지요. 사도 바울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 보면서 그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자신은 불신 이웃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떤 빚일까요? 복음의 빚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다멕섹 도상에서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하신 목적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 아가야 지방을 돌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로 하여금 그렇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만든 동인은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자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주셔서 믿게 하셨는데, 내게 주신 그 복음은 나의 불신 이웃에게 전해 주라고 우리 주님이 부탁했습니다. 그 복음을 나만이 간직하고 살다가 천국 들어가고 나의 불신친구가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나는 도둑놈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배달사고라고 부르지요. 내 이웃에게 주라고 부탁하고 간 것을 이웃에게 주지 않고 내가 꿀꺽 삼켜 버렸으니 말입니다. 


고전9:16절<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 즉 의무 조항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의 사명입니다. 캄보디아로 단기선교 떠나는 모든 이들이 이런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선교를 왜 해야 하는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선교하는가?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합니다. 막16:15<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명입니까? 부활하신 예수의 명이다. 에베소서에 보면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신발을 신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것을 우리 주님이 명하고 있습니다. 


마28:19-20<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4개의 동사 중에서(간다, 제자 삼는다,세례를 베푼다,(그들이 지키도록)그들을 가르친다. 어느 것이 주동사인가? 제자 삼는다가 주동사입니다. 다른 세 개의 동사는 모두 현재 능동 분사형이다. 부대상황을 가리키지요. 너희는 제자를 삼으라,선교는 제자 삼는 일이다. 누구를? 모든 민족을, 에스노스는 유대인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스라엘을 포함하지 않는 이방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백성.민족으로 번역이 된다. 가면서=온 천하에 다니면서(막16:15절 참조, 분사형이 사용되었다)-선교는 감으로써 시작된다. 성도는 마당발이어야 한다. 온갖 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OT에서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백성을 해방하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신 다음에 모세에게 선교 명령을 내릴 때에 내리신 선교 명령은 ‘가라’라는 한 단어다! 출4:12<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말을 가르치리라>,가라! 짤막한 군사 용어! 네가 피선교지인 애굽에 가서 해야 하는 말을 너에게 가르쳐주리라! 에스겔에게도 우리 주님이 짧은 가라는 명령어를 내리시면서 포로 공동체에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겔3:11<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라고 말하라>, 우리 주님이 70인 전도단을 보내실 때도 ‘가라’라는 단어의 명령형을 사용했다,. 눅10:3<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갈지어다=(너희들은)가라! 가라! 선교의 명령권자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 예수이시다. 야들아 너희들이 가면 좋겠구나가 아니라, 명령입니다:너는 가라! 너희들은 가라! 저 세상으로! 


요20:21절<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선포되는 현장에는 언제나 드러난 명령이든지 아니면 숨어 있는 명령이든지 선교 명령이 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부활 사건의 증인이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 땅에 파송 된 자들이다. 우리의 Id가 무엇일까? 우리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부름 받은 자로서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주일날 단기 선교 팀이 캄보디아로 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두 주간 동안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남아 있는 우리들은 보내는 자로서 2주간 동안 기도로 후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직접 갈 것인가 아니면 보낼 것인가? 


세 번째로, 아래로부터의 부르짖음이 있기 때문에 선교하러 갑니다. 눅16:19-31(24):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지옥에서 부자가 부르짖는 소리-너무 고통스럽다! /부자가 왜 지옥에 가있고, 빈자인 나사로는 왜 천국, 즉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가?/부자가 무슨 악행을 범했는가? 아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 빈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빈자에 대한 무관심! 자신이 가진 재산이 자기의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 하나님의 것! 자신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배만 불리고, 쾌락을 추구하면서 방종한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재물을 맡기시는 이유는 그 재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가난한 자와 나누어 갖도록 하셨는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지옥 갔다.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를 바로 사용하지 못해서 처벌을 받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오늘날의 재벌들은? 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 혹은 부에 대한 하나님께 대한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다면…지옥 가운데 제일 뜨거운 아래 목에서 고생할 것이다. 한국에는 개천에 용 난 졸부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한번 육신을 떠나면 영생과 영벌이 결정되고 그것은 돌이킬 수 가 없다. 지옥에서 들려 오는 신음 소리 때문에 오늘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한다. 그들이 그 뜨거운 지옥에서 영원한 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교회가 성령불을 잃어 버리면 세상 사람들이 지옥불로 들어가게 된다. 교회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부담감을 가지고 존재해 있어야 한다. 


네 번째로, 밖으로부터의 부름이 있기 때문에 선교지로 선교하러 갑니다. 행16:6-10<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마케도냐 인의 환상(유럽사람)-드로아에서 밤에 바울이 보았던 환상! –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에 의한 유럽선교의 시작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소아시아 지방을 전전하면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지경을 유럽대륙으로 넓히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 환상을 바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환상을 보고 난 다음에 바울 일행에게는 소아시아에서 조그마한 해협 맞은 편에 있는 유럽 대륙이 눈에 들어 온다. 사도 바울 일행은 이 환상이 하나님께서 유럽 대륙에 대한 선교로 해석하고 배 타고 곧 바로 건너 갔다. 이 배는 토인비가 말한대로 유럽의 운명을 싣고 간 배였다. 바울 일행은 마케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들어가서 빌립보 교회를 설립했다. 빌립보 교회를 필두로, 유럽 대륙에 데살로니가 교회, 고린도 교회, 등등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한국 선교에도 복음 전래되던 시기에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한국의 마케도냐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분이 있습니다. 개화기인 조선 말기에 이수정 성도에게 그런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는 44세로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40세에 예수를 만나서 4년 동안 헌신하다가 1886년 조선의 개혁을 반대하던 수구파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 갔다가 1883년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지요. 1884년 12월 13일에 미국에서 발간되던 선교잡지에 조선 선교를 호소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 글이 미국 장로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짧고 굵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성도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직도 미전도 종족이 지구상에는 많습니다. 그들의 도와달라는 부름에 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 안에서부터 선교해야 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마음에 선교의 불을 지핍니다. 고후5: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강권하다는 것은 붙잡는다,지배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바울을 붙들고 지배했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붙들었기에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땅 보다 넓고,바다 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해 봅시다. 


여섯 번째로,우리 주님이 전도하셨기에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막1:38-39절<이르시되 우리가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의 삶의 목적은 복음 선포에 있었다. 전도한다. 선포한다. 무엇을? 천국을! 우리들도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서는 천국의 실재를 경험해야 생생하게 전할 것이 아닌가? 우선 천국의 실재가 내 삶에 와 닿도록 기도하라. 이것이 안 되었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하기, 하나님이라는 실존을 경험하기 위하여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 성령 체험이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생생한 실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갑니다. 외양도 닮아 가지만 행동거지도 닮아 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전도의 모범을 보였다면 우리도 한 평생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1: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 되리라> 캄보디아 비전 트립을 떠나면서 어떤 마음으로 선교에 임해야 하는가? 다섯 가지 마음입니다. 첫 번째로 캄보디아 인들에게 복음의 빚진자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한다. 두 번째가 하나님께서 캄보디아로 가라고 명하셨기에 그 말씀 순종하여서 캄보디아로 가는 겁니다. 세 번째로 지옥에서부터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들었기에 캄보디아 인들도 지옥에 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겁니다. 네 번째로 캄보디아로부터 와서 도와 달라는 요청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랑의 마음 때문에 캄보디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여섯 번째로 우리 주님이 전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기에 나도 캄보디아인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가운데 어떤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까? 그 마음이 이번 비전 트립에서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서 팔레스타인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 땅으로 보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그 땅을 무슨 땅이라고 불렀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비옥한 땅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실상은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 아니라 척박한 땅입니다. 비가 적은 땅이고, 비가 적기에 주기적으로 가뭄의 고통을 겪는 땅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사실 그 땅은 쉼 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땅이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선택한 아브라함이라면 전쟁이 없는 평안한 땅으로 보내실 일이지, 어디로 보냈습니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 땅은 중동의 화약고와 같습니다. 전쟁이 끊일 날이 없는 땅입니다. 고대로부터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야, 희랍, 로마, 십자군 전쟁 등등 현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창12:1-3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그 땅으로 아브라함을 보낸 의도는 그 땅에서 복음이 온 세상에 신속하게 전파되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아프리카, 아세아, 유럽이 만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이 세 대륙의 교차지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신속하게 세 대륙으로 퍼져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보시고 아셨기에 아브라함을 전쟁의 땅으로 보냈습니다. 북방 세력인 앗수르와 바벨론이 강성해 지면 남방 애굽을 먹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땅을 지나가야 하고, 남방 애굽이 강성해 지면 북방 세력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먹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땅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 땅, 팔레스타인 땅으로 보낼 때에 아브라함을 선교사로 불러서 보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보스톤으로 보냈을까요?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보다 나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곳 보스톤에 보낸 이유가 바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보낸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선교를 하라고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선교에 힘쓰는 삶을 삽시다.


켐연장

2018.01.02 12:35:45

2017년 12월 29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229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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