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20

일시:4/6/2018 

찬송가:183장(빈들에 마른 풀 같이)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위로 받고 싶으십니까? 그 하나님의 위로를 <성령의 위로>라는 말로 성경은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위로는 성령이 주시는 위로라는 말입니다. 행9:31절<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성령의 위로는 성령이 주시는 위로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데, 누구를 통하여 말입니까? 성령을 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바로 성령이 주시는 위로라는 말이지요. 오늘 우리들도 이런 성령이 주시는 위로를 충만하게 받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위로도 필요하기는 합니다. 사람들의 위로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충분히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이런 인간적인 위로보다는 위의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사모합시다. 


이런 하늘 위로는 죄인이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임합니다. 


죄를 짓게 되면 인간의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이사야 48:22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은 사악한 사람들이고 죄를 지은 죄인들입니다. 죄는 성도를 더럽히고 영적 자존감을 무너뜨려 우리를 초라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죄는 반드시 우리 마음속에 죄책감을 유발시켜서 우리들의 마음을 무척 무겁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죄책감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죄책감이 없다면 그야 말로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멕베드'에서 멕베드의 부인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죄책감은 밤낮 그녀의 영혼을 따라 다니며 괴롭혔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저주받은 흔적이여 지금도 피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아라비아의 모든 향유로도 이 작은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단 말인가?" 죄를 씻어 낼 수가 없어서 그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이지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기를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네 앞에 그저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렘2:22). 죄와 죄책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영적 특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죄악의 사함을 입는 것입니다. <시편 32편>기자는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도가 받는 최고의 복은 내 영혼과 삶이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죄사함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죄사함의 은총을 주심으로 위로의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과거에 어떤 죄인이었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체험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자유인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르지요. 새로운 피조물이란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네 죄를 사하여 주고, 너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해주고, 해방을 얻게 해 준다”는 선언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기에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8:1-2절<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34절<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 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령에 대하여 

성령모독죄: 

마12:31-32절<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 모독 죄는 참 무시 무시한 죄이지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으로부터 그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그리고 다가 올 다음 세대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무서운 죄가 바로 성령모독 죄입니다. 31절은 성령 모독으로 되어 있고, 32절은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 모독이라는 말로 규정되어 있는 죄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모두 나옵니다. 이 성령 모독이 무엇이라고요?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성령 모독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against! 성령을 대적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혹시나 내가 이런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하면서 전전긍긍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나 내가 성령 모독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시면서 신앙생활하시는 분은 확실하게도 성령 모독 죄를 짓지 않았다고 확신해도 좋습니다. 우선 성령 모독, 즉 성령을 거역하는 이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까? 마태복음에서는 귀신들려서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왔는데, 예수께서 그 사람의 눈을 열어 주었고, 말을 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그 곁에 섰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이 사역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그렇게 했다고 악평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사역은 누구를 힘입어서 하는 사역입니까?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는 사역인데도,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그런 사역을 했다고 비방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 역사를 악령의 역사로 폄하하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령이 하신 일인데, 성령이 아니고 악령이 했다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령을 무엇이라고 비방했나요? 악령이라고 말입니다. 말로 역사적 예수를 비방하는 것은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지요.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니 술주정뱅이하면서 가십거리로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비방은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욕하는 것은 영원히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오늘 우리들은 신앙생활, 교회 생활하면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우리는 환영하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우리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인정하고 높이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소멸죄: 

데살로니가 전서5:19절<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이것은 명령형입니다. 소멸한다는 것은 끈다, 억누른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불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령불! 마가의 다락방에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은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임하였습니다. 불 같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불 일듯이 일어날 때에 그 성령을 억누르거나 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령을 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 성령 불을 끄게 됩니까? 예를 들면 마음에 물컹물컹한 감동이 있어서 기도 하고 싶은데 기도하고 싶은 환경이 안되면 기도를 못하게 되지요. 그러면 그 감동이 곧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나중에는 성령 감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되지요. 이런 일이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 감동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감동이 더욱 일어나게 됩니다. 차를 타고 운전하고 있을 때에도 이런 성령 감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런 감동이 임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또한 길을 산책할 때에도 이런 감동이 임합니다. 또한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에도 이런 감동이 임합니다. 이런 감동이 임할 때에 그 감동을 누르지 말고 그 성령 감동을 따라서 잠깐 잠깐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런 감동이 더욱 자주 더욱 크게 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 근심: 

엡4:30절<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 믿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선물이라고 해서 성령이 물건이나 세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지정의를 인격의 삼요소라고 하지요.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 인생들을 인격체라고 부릅니다. 성령도 지정의를 갖추고 있으면서 막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를 내 생애 구주로 영접할 때에 성령님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 오시지요. 그리고 나와 연합하지요.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늘 내 안에서 살아 활동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 때에 성령님이 근심하게 되는가? 내가 죄를 지을 때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내가 우리 주님 예수님 외에 다른 우상들을 따라가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내가 또한 십계명을 범하면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지을 때에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근심하십니다. 내가 죄를 지을 때 마다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이 바로 성령님이 활동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일상 생활하면서 조금이라도 신앙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게 되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근심하게 됩니다. 근심과 슬픔과 또한 양심의 고통 때문에 무척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런 성령의 근심에서 해방 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서 죄를 지었음을 자백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근심이 사라지고, 성령의 기쁨이 내 마음 속에서 솟아 오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모독하지 말아야 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켜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성령에 대하여 소극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적극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성령 인도: 

갈 5:16절<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롬8:14절<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성령 안에 머물러 있으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충만하게 거하실 때에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 반대로 성령이 충만하지 않을 때에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면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갈5:17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육체의 소욕, 세상적인 것에 대한 소원이 불같이 일어나서 성령을 거스르게 됩니다. 이런 때에 내 마음을 따라 산다면 실족하게 되지요. 그러나 내 안에서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여 계실 때에는 내 마음이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성령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게 되지요. 그런 때에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해도 성령을 따라 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게 되는 상태, 이런 상태를 주님과의 연합이라고 부르지요. 요15:7절에는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여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이런 영적인 상태가 되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되지요. 이런 상태가 성령을 따라 사는 상태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면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나님 뜻을 벗어 나지 않는다. 내가 주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는 존재론적인 일치가 일어 나야 한다. 


찬송가 183장  


성령 모독 죄를 짓지 말고 성령 소멸 죄를 짓지 말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짓지 말고 성령을 거스리지 말고,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됩시다. 성령의 위로를 기다립시다


켐연장

2018.04.11 05:45:35

2018년 4월 6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406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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