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22

일시:4/20/2018 

찬송가:280장(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1. 회개는 믿음 세계로 들어 가는 입문입니다. 회개 없이는 기독교의 신앙 세계로 들어 갈 수가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세계는 참 깨끗하고 순수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갈5:19-21절<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런 일을 하는 자들/ 동사 꼴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실수해서 유혹에 넘어가서 일탈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스타일에 그런 범죄에 깊이 사로잡혀 있어서 헤어 나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즐겁게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천국 들어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에서 탈출하여서 천국 들어 가고자 시도하면 그들이 지은 죄악들이 그들을 뒤에서 잡아 당겨서 그들의 죄악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지요. 


오늘날 불건전한 성령 운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아니면 어떤 형태로건 신비 체험을 하는 것이 성령 운동의 전부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분을 보고서 그것이 전체인양 속단하기 때문에 그런 이해가 생겨 납니다. 이런 이해는 마치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난 후에 코끼리를 저마다 자신들의 경험에 의지해서 묘사하지요. 코끼리의 상아를 만진 맹인은 코끼리는 창과 같다고 이해했고,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분은 코끼리는 마치 기둥과 같다고 이해했고, 또한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진 분은 코끼리는 마치 벽과 같다고 이해하지요. 이런 이해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온전한 이해는 아닙니다. 온전한 이해는 맹인의 눈이 한번 띄어진다면 일어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 운동을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성령 운동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입니다. 진정한 성령 운동은 회개 운동입니다. 하나님을 뒤에 두고 내 욕심을 따라서 떠난 인생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이 성령운동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하나님께로 돌아 갈 수가 있지요. 그래서 회개 운동은 무슨 운동이라고요? 말씀 운동입니다. 따라서 성령운동은 회개 운동이고 동시에 그것은 말씀 운동입니다. 말씀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줄 때에 우리들이 우리들의 죄악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에 그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와 죄의 세력을 제거 해야 합니다. 그 세력이 제거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세력이 우리를 뒤에서 끌어 당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못나가고 그 자리에 주저 않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죄의 세력을 우리의 힘으로는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까? 성령을 의지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낸 성령께서 우리를 도울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놀랍고 신기한 신비체험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입신을 하여서 삼층 천에 올라가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씀을 바탕에 둔 회개에 힘쓰지 않으면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죄를 지으면 어떤 일이 우리의 영혼에 일어나는가? 여러 가지 감정적인 경험이 따라 오지요. 예를 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얼굴이 확 달아 오르는 수치심이 들기도 하고,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던고 하면서 후회하는 감정이 들기도 하고요, 마음에서 탄식이 나오기도 하고요, 또 그런 죄를 범한 자신에 대하여 미움이 생기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감정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더러워져서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찝찝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주님 하신 말씀을 읽어 봅시다. 


막7:18-2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 종교 의식적으로 더럽혀졌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졌다는 말입니다.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 공동체 안에 죄악이 발생하면 그 지역이 영적으로 더러워지게 되고, 또한 그 공동체가 더러위지고, 또한 그 죄악을 범한 사람의 영혼이 더러워지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들이 가볍다고 느끼는 그런 죄와 악을 범하면 우리의 마음이 찝찝함을 느끼게 됩니다. 찝찝함이 바로 우리 영혼이 더럽혀졌다는 증거가 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을 고후 7:1절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짓는 죄악을 가리킵니다.  


길을 걸어 가는데, 자동차가 지나 가면서 길 바닥에 고여 있는 흙탕물을 튀게 해서 내가 입고 나간 새 옷을 더럽힌다면, 그 옷을 입고서 하루 종일 돌아 다닌다면 아무렇지도 않겠나요? 계속적으로 찝찝함을 느낄 것입니다. 집 가까이서 그랬다면 곧 바로 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 됩니다. 중국 음식점인 짜장면 집에 들어 가서 짜장면을 먹을 때에는 흰옷을 입고 들어가면 안됩니다. 짜장면 집에 들어가서 짜장면을 먹을 때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짜장면이 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옷이 보기 흉하게 되지요. 그러기에 짜장면 집에 들어가서 짜장면을 먹는 날에는 검은 색 옷을 입고 가야 마음에 부담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집 짜장면 집은 테이블도 의자도 모두 새까만 색깔을 선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회개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우리 주님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4:17절<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또한 우리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행17:30-31절<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들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행3:19절<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더러워진 심령을 깨끗하게 하자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의 심령을 씻으면 됩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예수의 피로 씻으면 됩니다. 


슥13:1절<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미래 시제로 기록되었지요. 스가랴는 주전 6세기 말엽에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샘에서 샘물이 솟아 나게 하여서 신의 백성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줄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대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렸습니다. 그 보혈이 십자가라는 샘에서 강물같이 흘러서 우리 인생들의 억만 죄악을 씻어 주고 있습니다. 히9:14절<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의 보혈은 샘물과 같습니다. 우리의 억만 죄악을 씻기 위하여 지금도 펑펑 솟구쳐 올라 오고 있습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에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심령을 씻는 자마다 정결하게 됩니다. 


렘4:14절<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2. 기도응답:심령이 깨끗하게 되었는가? 우리의 삶에 죄가 예수의 보혈로 모두 깨끗하게 씻기어 졌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서 간구할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히4:16절<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거지는 동냥을 주는 분의 눈치를 보면서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거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가지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 아버지께 청구할 수 있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안 주시면 어쩌나 하는 의심을 모두 붙들어 매어 놓기를 바랍니다. 안 주시면 어쩌나 하는 의심은 사탄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 붙잡혀 있어서는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일으키는 사탄 마귀를 우리의 발바닥을 짓 밟아서 털어 버린 후에 우리는 내가 이것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꼭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구해야 합니다. 


간혹 어떤 예수 믿는 분들 보면 이런 모토를 가지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자신이 내 건 기도 제목에 대하여 말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러니 해 보자는 모토로 기도합니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으면 기도하기는 왜 기도하냐고? 그냥 너의 힘 가지고 그 일을 하면 되지. 뭐 그렇게 귀찮게 기도하냐고 말입니다. 이런 모토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고 신념의 기도가 되겠지요.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 무력감이라고 부르지요.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큰 기도 제목을 앞에 놓고 무력감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은 다음 단계로 넘어 갑니다. 다음 단계로 하나님께 그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또는 하나님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이런 간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이 일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묻는 질문이지요. 하나님이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 질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합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크다고 생각하는 그 기도 제목도 우리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못 들어 주실 것도 없고, 내 문제가 너무 시시해서 안 들어 주실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나 우리의 마음에 짐이 되는 것이면 우리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감기 치료는 쉽게 느껴지나 간암 폐암 같은 암치료는 어렵게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기나 암이나 똑 같이 쉽지요.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면 제 기도제목을 이루어 주십시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할 수 있거든 내 기도 제목 이루어 주십시요 라고 기도한다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혹시 내 기도 제목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온 것이 아니고 그냥 자연적으로 되어 진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 제목을 원하시는 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무력감 속에서 그 기도 제목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 개입해 주셔서 그 일을 이루십니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여서 이룬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원하신다면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이 절대 믿음입니다. 


 히11:1절<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80장(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켐연장

2018.04.24 07:05:43

2018년 4월 20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420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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