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26 
일시:5/18/2018 
찬송가:286장: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위치에 두고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신앙은 세상 물결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모래는 바람에 휘 날립니다. 그러나 모래가 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흩날리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 가지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신앙인들은 어떤 유혹과 핍박이 와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앙 인격을 어떤 말씀 위에 세워 놓았습니까? 

 우리 주님 예수님의 경우?  

예수의 공생애는 나이 30에 시작되었습니다.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지요.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비둘기처럼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세례 받으신 후에 곧 무슨 일을 하셨지요. 우리 주님은 유대 광야로 가서 거기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40일 금식이 끝난 후에 사탄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예수를 시험했습니다. 그 유명한 시험 세 가지 말입니다. 이 세 가지의 시험을 우리 주님이 넉넉히 이겼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이겼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겼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우리 주님 예수의 마음 판에 새겨져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말씀은 성령의 검이지요. 그 말씀에 믿음을 실어서 선포했더니 시험하는 자인 사탄이 깨갱 거리면서 떠났습니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말씀이 모두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마4: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8:3절 말씀의 인용이지요.  

두 번째 말씀/마4:7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신명기 6:18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세 번째 말씀/마4:10절<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6:13절 말씀 인용이지요.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을 가슴에 품고 사역하셨지요. 사탄의 시험을 마음에 갈무리 되어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이처럼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요? 엡6:17절의 기록을 따르면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이 사용하는 검입니다. 우리들의 싸움을 영적인 싸움이라고 하는데, 이 싸움은 우리와 사탄, 즉 어둠의 영과의 싸움이 아니라, 성령과 어둠의 영과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서 우리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는 싸움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성령님이 우리들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싸움을 잘 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 두기만 하면 됩니다. 나와 어둠의 영과의 전쟁이 아니라 어둠의 영과 내 안에 계신 성령과의 싸움입니다. 내가 만약 나의 무지와 어두움과 죄악 때문에 성령의 활동을 약화시키면 나는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막힘 없이, 장애 없이 사탄과 어둠의 영과 전쟁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열어 드리고, 나 지신을 내어 드린다면 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부여 잡고 믿음 가운데 서 있으면 성령 하나님은 바로 그 말씀을 가지고 사탄과 어둠의 영을 패주시켜 버립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야간 훈련을 많이 합니다. 음속으로 비행기를 운행하는데, 이 전투기는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높이 솟구쳤다가 땅으로 급강하 하기도 하고 아뭏튼 캄캄한 밤에 곡예 비행을 합니다. 그 때의 지침이 조종사는 계기 비행을 해야 합니다. 전투기가 몇 번을 빙빙 돌고 나면 하늘과 땅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캄캄한 밤에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안된다는 말이지요. 자기의 머리로 비행기의 상태를 파악하지 말고 오직 계기판을 보라는 말입니다. 파일럿의 생각에는 똑 바로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계기판에는 뒤집혀서 날고 있다면 계기판을 따라서 비행기를 작동하라는 말이지요. 그래야만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뒤집혀서 날고 있는데, 전투기 조종사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하여 조종간을 당기면 그 비행기는 바다에 추락해 버리지요. 그래서 파일럿은 계기비행을 하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의 경험, 지식, 판단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래야 우리의 삶이 유혹에 무너지지 않고,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많이 먹어야 우리 영혼이 길을 잃지 않는다. 말씀을 많이 먹으라. 

 겔2:8-3:3절<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  

왜 말씀을 먹으라고 했을까? 말씀은 귀를 통하여 들으라고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보기만 해서는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음식은 입으로 먹을 때에 비로소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친 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의 귀로 듣고 우리의 마음에 받아 들이는 것을 먹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와서 소화될 때에 비로소 내 몸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내 영혼이 받아 먹을 때에 그것이 내 영혼을 유지하는 에너지를 줍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도 렘15:16절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이 영의 양식을 얻어 먹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이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아무리 내 삶에 육신적인 모든 조건이 충족하게 되더라도 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 먹지 못하면 내 삶에는 참된 만족과 기쁨이 없어집니다. 늘 영적으로 허기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삶의 모습이 나옵니까? 이 교회 기웃, 저 교회 기웃 거리게 됩니다. 이 교회 기웃, 저 교회 기웃 거리는 신앙인을 무슨 신앙인라고 부르나요? 유람선 탄 교인이라고 부르지요. 유람선이 한 자리에 그냥 정박하고 있지 않지요. 유람선은 많이 바다 위를 돌아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교인을 유람선 교인이라고 부르지요. 

 따라 해 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보양식! 

 우리의 몸이 병들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거나 해서 고칩니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기 전인 옛날에는 민간요법을 많이 썼지요. 옛날 우리 나라, 조선에서는 한의원들이 진맥을 통하여 환자를 치료했지요. 요즈음 의사는 청진기를 가지고 몸의 상태를 진찰하지만, 옛 시대에는 손목의 동맥에 손을 대어서 감촉으로 몸의 상태를 알아 내었지요. 옛 시대에는 ‘일구,이침,삼약’이라는 문구가 통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몸에 병이 들거나 이상이 생기면 의원의 진맥을 받은 후에 의원이 맨 먼저 뜸을 뜹니다. 뜸이라는 것은 쑥을 말려서 만든 것이지요. 그것을 몸의 경락에 놓아두고 불을 붙여서 몸을 회복 시키지요. 뜸을 구라고 부르지요. 이침이라는 말은 두 번째로 의원이 시술하는 것인데, 바늘을 가지고 찔러서 경락에 자극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맨 마지막으로 약을 처방하여서 주지요. 이것, 일구 이침 삼약, 옛 시대의 치료 매뉴얼입니다. 

 사실 뜸이나, 침이나,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식이요법! 먹는 음식을 가지고 우리의 몸을 치료하는 것을 말하지요. 확실히 우리의 몸은 우리가 매일 매일 먹는 것에 의하여 건강이 좌우됩니다. 우리의 몸의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잘 가려서 먹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20대, 30대 때에는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잘된다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리지 않고 쑤셔 넣으면 되나요 안되나요? 당연히 안되지요. 몸에 좋은 것을 가려서 먹어야 노년의 건강을 지킬 수가 있고, 또 건강한 아들과 딸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몸의 건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말하기 위하여 우리의 몸의 건강을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무엇을 먹어야 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그리고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이것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영양 결핍이 일어나고 우리 영혼에 영양실조가 일어나서 우리 영혼이 골골 거리게 됩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데도 우리의 몸의 최고의 약은 좋은 음식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병이 들면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심리학에 바탕을 둔 상담도 아니고,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정신성 의약품도 아니고요. 무엇이라고요?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온전하게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잠18:14절<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심령은 영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생은 이분법으로는 영과 육으로 되어 있고, 삼분법으로 이해하는 영,혼,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분법이든 삼분법으로 이해하던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부분인 영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영을 영과 혼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만, 확실히 그 부분, 육신과는 다른 영적인 영역인 우리의 영혼도 상처가 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병이 들듯이 말입니다. 잠언의 ‘심령이 상하면’이라는 말은 심령에 병이 든다는 말일 뿐만 아니라 글자 자체로는 심령이 외부로부터의 압제와 공격으로 말미암아 얻어 맞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이 얻어 맞으면 몸이 상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공격이나 학대를 당하면 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상하게 되면 이 상함이 어떻게 치유될 것입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나요? 그냥 나 두면 치유가 안됩니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 심령의 상처, 우리의 영혼의 타박상은 그냥 나 두면 그 상처가 더욱 우리의 마음의 깊은 곳으로 가라 앉아서 치유가 어려워 집니다. 그 마음의 상처가 우리의 의식 저 밑바닥으로 가라 앉으면 앉아 갈수록 치유가 힘들어 집니다. 깊은 곳에 가라 앉아 있는 마음의 상처는 내 삶을 더욱 억압하게 되지요. 어떤 때에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면서 그런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고요. 또한 자신에게 왜 그런 행동이 나오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돌리기도 하고요. 이렇게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마음의 상처 덩어리를 제거하여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의 깊고 깊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회복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으로 모셔 들일 때에 내 영혼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내가 애써서 내 영혼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할 때에 그 다음의 모든 치유 과정을 성령이 알아서 자동적으로 처리합니다. 내가 무언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나는 마음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상처는 일종의 어두움입니다. 그 어두움에 빛이 비추이면 그냥 어두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어두움을 몰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의식 깊은 곳에 묶여 있는 그 어두움에 그냥 우리 하나님의 얼굴 빛이 비추이면 그냥 어두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내 마음을 열어야 빛이 저 깊은 내 마음의 어두운 부분을 비추일 수 있겠지요. 내 마음을 열지 않고 닫아 두고 있으면 내 깊은 내면 세계에 빛이 비추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 앞에 마음을 열라는 것이 아니고 누구 앞에 우리 주님 앞에 열어 놓으라는 말입니다. 이 시간 조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열어 놓기를 바랍니다. 내 부끄러움, 내 아픔, 내 고통을 목사와 전도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은밀히 보시는 우리 주님께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가 마음 속으로 영접한 말씀을 가지고 내 마음 깊은 곳에 가라 앉아 있는 상처 덩어리를 조금씩 조금씩 각아 내어서 내 밖으로 밀어 내 버립니다. 큰 믿음이 있다면 한 순간에 그 상처 덩어리가 모두 제거 되겠지만, 적은 믿음이라도 염려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조금씩 조금씩 상처들은 사라지면서 줄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말: 주여 나를 낫게 하소서 그러면 나으리이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겠습니다. 

찬송가 286장: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켐연장

2018.05.22 07:15:45

2018년 5월 18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518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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