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2002년 2월 7일 목요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15:11-20)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 교만,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통제하기 위한 금송아지
만들기에 대한 유혹....... 나는 아직 끝이 없다. 과연
이것의 끝은 언제일까.


2002년 2월 10일 일요일

  주기도문을 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구약 39편과 신약 27편,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주기도문의 첫 말처럼 ‘아버지여!’가 아닐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고 부르고 함께 생활하고 따르는 것.
아버지!, 이것이 시작이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2년 2월 14일 목요일

  “천일을 기도하고 만일을 준비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제 일천 번제(一千燔祭)를 드리자.
오늘부터 하나님께 나 자신을 산 제사로, 번제로 드리기
위해 새벽기도를 갔다. 흙가마 속에서 뜨거운 불길로 겉
사람은 온전히 태워지고 참숯처럼 속 사람만이 남게
되기를 간구한다. 마음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죄악을
용서하시어 성결케 해 주실 것을 빌고, 작년 6월 이후로
중단되었던 일가친척, 친구를 비롯한 친지들의 구원을
위해 교회 바닥에 끓어 엎드려 빈다. 내 이 생의 동반자가
영적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


2002년 2월 20일 수요일

  세 번째의 번제 시간. 고린서 후서 12장 1절에서 10절의
말씀은 참으로 많은 진리와 은혜를 담고 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해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2002년 2월 21일 목요일

  네 번째 번제를 드렸다. 아브라함의 손에 묶이고 나무
제단에 올려져 불태워지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각 뜨려고
칼을 든 아버지를 보는 이삭의 마음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솔로몬의 송아지처럼,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스스로 번제물이 된다. 밧줄에 꽁꽁 묶여 각이 뜨인 채로
장작더미에 올려져 번제물로 드려지는 나에게 하나님이 세
가지를 물어보신다.  
  하나는 “번제물은 깨끗한 어린양이어야 하는데, 네가
깨끗하냐?”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린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질 수 있다고 답한다.
  둘은 “너는 왜 너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느냐, 번제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부모형제,
일가친지의 이름을 하나하나를 부르며 이들을 모두 구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기도를 다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소원이 또 무엇이냐고 하신다. 나는 우리 민족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가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또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신다. 이번에는 내가 모시고 있는
‘참 괜찮은 정치인’인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셋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므나 비유’가 생각났다. 귀신을
몰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은사를 수건으로 감싸두지 말고
사용하여 백배, 천배의 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영육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마귀는 물러가라.
병마는 물러가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해질 지어다, 영육이 온전해질 지어다’라고
명령한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 가지가 더 떠오른다.
‘하나님을 앞서가지 말라, 하나님을 넘겨짚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다만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 경험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큰 은혜임을
생각한다.  


2002년 2월 25일 월요일

  일곱 번째 번제를 드리려 새벽에 일어났다. 집안의
갈등으로 인해 또 힘이 빠졌다. 힘이 없다.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이 참으로 멀고도 힘들게 느껴진다. 포기하고
싶다. 목사님이 택한 성경구절이 또 내 가슴을 친다. 나는
1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것인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수기, 14장 1-10절)
  다시 나를 번제로 드리며 나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간절히 기도한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천국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결혼한 사람에게 천국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다. 가족이
하나님 품속에서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우리 가정이
천국이 되기를,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정에 임하기를
엎드려 기도한다.      
  주기도문에 있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은 당위이자 우리 인간의 사명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만들기’를 계속 생각한다.


2002년 3월 7일 목요일

  민주당 대통령후보경선 TV토론을 위해 어제 울산에
왔다. TV토론을 준비하느라 어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내일이면 첫 선거가 열리는 제주도로 간다. 그런데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이 각성되어 말똥말똥하다.
  밤새도록 몸을 뒤척인다. 그러나 밤새도록 하나님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시구나.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팔과 손으로 직접
올해의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고 계시구나. 우리 민족을
구원해달라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제 때가 되어
본격적으로 일을 만들어 가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밤새도록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울산의 책임자가 노 장관과 조찬을 하면서 말했다.
“희한하게 모든 일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결국은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노 장관이 이기면,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도울 때만 이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사람도, 돈도, 권력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치르는 이 선거는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혁명적인 것이다.
우리가 이긴다면 그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직접 선거에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울산에서의 TV토론에서 우리는 많은 공격을 받았고,
비전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TV토론을 하고 난 뒤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와 장관님과 마주 앉았다.
“우리가 7년 전에 처음 정도전을 만났지요. 그리고 작년
가을에는 링컨을 만났습니다. 이제 세종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세종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2년 3월 13일 수요일

  새벽기도를 갔다. 열 번째 번제를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리라’ 하신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 신경 쓰지
말고, 한 눈 팔지 말라고 하신다.      


2002년 3월 16일 토요일

  광주에서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큰 표차로 우리가
1위를 했다. 제주에 이어 이변의 연속이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광주 투표 하루 전에는
SBS-문화방송에서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여론조사결과가
나왔고, 지식인들이 지지선언이 있었다. 결과는
이변이었고 감동이었다. 단상에 올라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 드디어
지역감정이, 지역분열이 치유되기 시작하는구나!

  나는 1990년 영호남 통합, 동서통합을 주장한 이수인
선생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김대중,
김원기, 노무현을 거치면서 한번도 ‘개혁과 통합’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정치권에 있은 지난 12년간 '개혁과
통합'이 나의 슬로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모신 분들의
슬로건이었다. 96년에는 국민통합추진회의가 만들어졌고,
5년 전에는 ‘개혁과 통합’을 주제로 한 이수인 선생의
책을 만들었으며, 지금 우리 노무현 캠프의 슬로건도
‘개혁과 통합’이다. 두 달 전부터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모신 세분이 모두 인품이 훌륭하고 그 세분들이
‘개혁과 통합’이라는 정치적 화두를 일관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 장관은 진솔하고 격의없고 담백하지
않는가. 이 또한 사람과 더불어 생을 사는 하나의
기쁨이다.

  오늘 광주에서의 선거결과를 보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정말 이 일을 하나님이 하나하나 개입하고
계시구나! 사실 나는 오늘의 승리보다도 더 기쁜 것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고민들, 영과
육의 문제, 전능하심의 문제, 나의 기도에 진실로
응답하시는가의 문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나를 항상
지켜보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다.
나의 아빠 아버지이시다. 간난이 때부터의 아버지이시다.
친아버지이시다. 이 얼마나 황홀할 정도로 영광스런
일인가! 뛸 듯이 기뻐할 일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작년 가을
‘노무현이 만난 링컨’의 탈고를 끝냈을 때 노 장관은
링컨이 대통령되는 과정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이 대통령 되게 다 만들어놓고 나를 뺑뺑이
돌리고 계신다”고. 나는 링컨 책을 준비하면서 계속 그
생각을 했다. 노무현은 링컨의 길을 간다. 선거과정도
그렇게 가고 있다고.....하나님이 동서의 통합만이 아니라
남북의 통일을 이루려 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링컨은 순전히 하나님이 만든 대통령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일을 하고 그 일을
마치자마자 하나님은 바로 하늘로 데리고 가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뒤끝이
지저분하지 않다. 맺고 끊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
세상 어떤 사람이 하는 일보다 참으로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2002년 3월 14일 수요일

  다시 한번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목격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부모님을 수년간 괴롭혀온 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지난 여름 기도했던 땅
문제를 참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결해주셨다. 노 장관의 급격한 부상과 더불어
나의 기도를 또 들어주셨다. 정이도 언젠가는 나을
것이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시간이 필요하다. 조용기
목사의 말씀처럼 아이를 잉태하여 출산할 때까지 열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기도응답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응답하시리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나의 아버지. 나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시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02년 4월 7일 일요일

  “아브람의 전쟁, 기드온의 전쟁, 노무현의 전쟁”

  오늘 주일설교의 제목은 ‘아브람의 전쟁’이다.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최초의 전쟁은 아브람이 318명의
하인(군사)을 가지고 당시의 중동 전체를 휩쓸었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시날 왕 아므라엘, 엘라살 왕 아리옥과
고임 왕 디달의 연합군을 격파하는 내용이다.
그돌라오멜을 비롯한 4국연합이 소돔 왕 베라의 5국연합을
격파하는 것을 볼 때 이들의 군사력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수만의 군사와 우수한 무기를 가졌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막강한 군대는 오합지졸로 보일 법한, 아브람이
이끄는 318명의 소규모 군사에게 대패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된 것은 아브람의
전략전술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318명이 용감무쌍했기
때문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전쟁을 이끄셨기 때문이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한 말처럼 “너희
대적(對敵)을 네 손에 붙이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7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전쟁’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일을 하시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말씀하시나, 기드온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시험한다.
그러나 결국 전쟁에 나서게 되는데 출전할 즈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당신의 뜻을 명확히 한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自矜)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결국 기드온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적을 격파함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병사를
추리고 추려 300명만을 남긴다. 기드온이 이끄는 이
300명이 메뚜기떼처럼 엄청난 미디안, 아말렉, 동방의
연합군과 해변의 모래처럼 수많은 낙타떼를 순식간에
무찌른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같이 보였던 전쟁이
하나님의 힘에 의해 완전히 승리로 끝난다. 이는 결국
‘기드온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한 달 전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그 누구도
지금처럼 노풍이 태풍이 되어 민주당 경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권, 나아가 우리 사회전체를 휩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노무현 캠프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인제 캠프에는 동교동 구파를
비롯 40명 이상의 현역의원이 음양으로 돕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2억5천만원의 기탁금을 내기 힘들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에게는 초기의 선거운동이 혼탁해질
정도로 쓸 돈이 많았다. 우리 캠프의 선거참모진은 가장
연배가 높다해도 40대 중반을 넘지 않았고, 자문교수단도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지 않았고 20-30명의
실무진과 노사모라는 팬클럽이 있었을 뿐이었다. 상대
진영에는 연배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것이
오히려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대적할 때처럼,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대적할 때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이인제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선이 시작된 지 불과 한달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모든 것이 끝났다. 이인제 후보
측은 선거를 시작한지 2주 만에 혼비백산하기 시작했고,
이성을 잃고 막가파식의 자살테러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울라간다. 이인제 대세론도, 이회창 대세론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지지도가 20% 이상
차이가 난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국 현대사, 아니 세계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정치혁명이 일어났다.

  이인제는 이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고 김심의 개입을
말하고 언론의 조작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이것이 음모라면 그것은 ‘신의 음모’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다.
김심(金心)개입도, 금권(金權)선거도, 관권(官權)선거도
아니고 ‘신권(神權)선거’이다. 이것은 ‘노무현의
선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거’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다. 모든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고,
모든 악재를 호재로 만드시는 하나님!  살아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막강하신가! 얼마나 주도면밀하신가!
얼마나 화끈하신가!


2002년 4월 10일 수요일

  지음(知音) 건수로부터 저녁에 전화가 왔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병이 나은 것처럼 정이가
나을 것이라고. 어제 내게 말했던, 지난 한달 간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만든 자기 사업의 문제가 오늘
모두 해결되었다고. 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 같다고. 정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이제 때가 되었구나’ 라고 답한다.


2002년 4월 21일 일요일

  오늘 경기도 선거가 성남에서 있었다. 어제 부산에서의
선거결과 정동영 후보의 표가 많이 나왔기에 오늘은
노무현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가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우리가 45대 55로
졌다. 이것은 이번의 선거과정에서 또 하나의 이변이다.
개표결과를 듣자 처음에는 참으로 황당했고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나는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노 후보께서는 유세 연설 초두에 부산
선거결과를 비롯한 이번의 선거과정을 설명하면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신다고 말씀하셨다.
경선 초기 기적적인 선거결과가 나왔을 때 대전에서 내가
후보께 드린 말씀을 오늘 노 후보께서 되풀이하신 것이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참패였다.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한
이변이고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노 후보를 비롯한 그
지지자들과 민주당을 한번 꺾으셨다. 낮게 만드시고
겸손하게 만드시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쓰실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시키고
단련을 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판을 짜기 위해 노
후보를 꺾고 민주당을 꺾었다. 노 후보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고 노 후보가 다른 사람과 더
넓게 연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나의
일은 하나님의 이 뜻을 받들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2002년 5월 20일 월요일  

  새벽기도를 오랜만에 갔다. 3월 초순 이래로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았고 1천번제도 중단되었다. 경선이 끝나고 여러
가지의 악재로 노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 이회창과
별 차이가 없다. 캠프 내에서 나의 위치도, 캠프의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의가 일어난다. 후보비서실
체제로의 전환 이후 지난 한 달간 계속 무기력, 무가치,
무능감이 밀려온다. 바람없는 연처럼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모든 것이 시들해진다. 왜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가. "천일을 기도하고 만일을 준비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로 하여 네 민족을 구원하리라"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다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


2002년 7월 21일 일요일

「제갈량(諸葛亮)의 남만(南蠻) 대장 맹획(孟獲)에 대한
칠종칠금(七縱七擒)」
  제갈량은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을
놓아주었다. 이렇게 해서야 맹획은 마침내 마음으로
제갈량에게 복종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의 괴수인
나에게 ‘칠종칠금’하고 계신가. 끊임없이 저항하며
독립하려 하는 나를 붙잡았다가 놓아주고, 또 붙잡고
놓아주기를 벌써 몇 번이나 했는가. 맹획은 여덟 번째
붙잡혔을 때 마음으로 복종했는데 나는 과연 몇 번째에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할 것인가.  


2002년 7월 30일 화요일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나의 행동을 이끄는 두 가지의 핵심 주제이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기쁨이다.

  퇴근길 차안에서「내 영혼이 은총입어 Where Jesus Is
Tis Heaven(예수가 있는 곳이 천국)」라는 찬송가를
들으며, 지난 겨울에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꼭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찬송가를 찾아보니 작사자는
1백년전의 C. F. Butler라는 사람이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때 임하느냐”고. 이에 예수님이 답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  
  서점에서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대강 훑어보고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성경은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일 뿐이구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앞의 누가복음 구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를 예수가 신화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사용한데 반해, 버틀러는 이 구절을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살아 계심을 증명하는 말씀으로 되새긴다. 주
예수와 함께 하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2002년 8월 8일 목요일

  ‘다시 천일 번제를 드리리라’ 작정하고 성령의
도움으로 새벽기도에 갔다. 우선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한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다가온다.
  마르다는 主를 손님(來賓)으로 모셨고 마리아는 主를
主人으로 모셨다. 주를 손님으로 모신 마르다는 항상
바빴고 염려했으며 만족이 없었다. 그러나 주를 주인으로
모신 마리아는 항상 여유가 있었고 행복했으며 감사가
넘쳤다. 주가 계신 곳은 마르다의 집이든 그 어디든 주가
주인이다. 주는 전지전능하신 주인이자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이 많은 주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위임자이고 관리인이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 11:38-42)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한, 12:1-3)


2002년 8월 10일 토요일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서 내가 체험한 것을
노 후보에게 전할 지, 말지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사도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20) 그러나 나는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마음이 나왔다가 들어가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제본을 해 놓고도 전달하지 못한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무현 후보에게도 내가
보고 들은 것, 체험한 것을 전하지 못한다.


2002년 8월 28일 수요일

  나의 처지와 생활과 인생이 답답하다. 가진 것,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내내 이러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팔아치운 집 값이 급등할 때,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러한
생각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때마다 예수님의
진주 비유가 떠오른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태 13:45-46)
  나는 분명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값진 진주를
하나 샀는데, 아름답고 귀한 진주를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사기 위해 팔아치운 과거의 소유들에
큰 아쉬움과 미련을 가진다. 계속 이런 생각이 살아
오른다. 값진 진주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니 팔아치운 그
물건들이 아까운 것이다.


2002년 8월 30일 금요일

  이갈렙 목사의 8월 25일자 설교를 들었다. 『내 죄, 그
골짜기 끌고 가 괴롭혀』라는 제목이 붙은 설교이다.
요단강을 건너고 막강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보잘 것 없는 아이성에서 참패를 한다. 그
참패의 원인이 아골의 죄에 있음을 알고 죄를 저주하며 돌
던지고 불사른다. 골고다의 언덕처럼 아골 골짜기도
하나님과 그 백성이 죄의 장벽을 깨고 다시 만나는
사건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작년 봄에 요단강을 건넜다고 분명히 생각했다.
그러나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는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아니 작년 봄에 내가 여리고성이라고 설정한 일가친척
친구들을 전도하지 못했기에 나는 여리고성을 아직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골의 단계에
있는가. 나는 과거의 습속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외에 믿기 전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아골인가?


2002년 9월 2일 월요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있다. 연관성의 원리이다.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 모두가 죄를 얻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 모두가 구원을 얻었다. 아골로 인해
이스라엘이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기생 라합으로 인해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구했다. 요셉으로 인해
이집트 전체가 기근을 면했다. 그러나 바로로 인해 이집트
전체가 피폐해졌다.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 그가 비록 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속한 조직과 세상이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악의 사람에 의해, 그가 비록 한사람일지라도 그가
속한 조직과 세상이 멸망에 이른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말씀은 진리이다. 이갈렙 목사의 8월 26일자 설교 ‘내
가정, 내 교회 아골과 인연해’의 요지이다.


2002년 9월 3일 화요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여리고) 성을 주셨느리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여호수아
6:16-1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여호수아 8:1-2)
  이갈렙 목사의 말씀처럼 여리고성과 아이성 공략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은 미미하게 보여도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땀흘려 거둔 곡식의
소유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어떤 일을 이루는데
하나님과 인간의 역할에 따라 그 결과물의 귀속이
달라진다. 만나나 여리고성의 전리품처럼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은 모두 하나님이 가져가신다. 일을 이루었으되 그
성과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속에 있다.  


2002년 10월 14일 월요일

  한국기독교갱신연구원의 목회자 세미나에 노 후보가
‘신앙과 애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나는
연설자료를 준비하고 그 동안 수없이 전달을 망설여온
나의 신앙일기「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수행비서를 통해 전달했다. 읽으시든 못 읽으시든 하여튼
후보님께 전달만 하라고, 내게로 넘어온 공을 떠 넘기 듯,
마지못해 의무를 이행하듯, 그렇게 말했다.


2002년 10월 29일 화요일

  “그가 나를 데리고 전(殿)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에스겔 47:1-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 22:1-2)

  나는 물이다. 이때까지는 그 물의 근원은 ‘나’였다.
그러나 김진홍 목사가 가르쳐준 에스겔서 47장,
요한계시록 22장에 의하면 그 물의 근원은 聖所이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이다. 결국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나로부터 비롯되는 물은 말라버릴 수도 있고, 끊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다를 만나 두려워 떨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물은
강물이 되어 강가의 생명나무를 자라게 하고, 바다로
흘러들어 바닷물을 소성(蘇醒)케 하여 물고기를 풍부하게
한다. 모든 생물을 번성케 한다.
  내 인생에 비추어도 성경은 진리이다.


2002년 11월 25일 월요일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신실하시다.
아버지께서는 변덕스럽지 않고, 성실하시며 신실하시다.
당신이 세운 뜻을 어떠한 조건에서도 이루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아버지, 나의 아버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정 후보를 이겼다. 지난
봄의 경선 이후로 또 한번의 기적이 이루어졌다. 6월
이후로 지난 4개월간 우리는 계속 정몽준에게 뒤져
있었고, 10%대의 지지율로 3위로 밀려나 있었다. 절망적인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지난 봄 이래로 계속
하나님의 뜻이 이번 대선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방에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일요일인 어제는 목사인 이재정 국회의원의 인도로
당사에서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기적은 극적으로 일어났다. 단일화 여론조사가 발표되기
3시간 전의 저녁  9시 뉴스에서는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 5대 2로 우리가 지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자정인 12시에는 2대 0으로 이겼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했다. 절망이 희망으로, 잿빛 그림자가 장밋빛
웃음으로.......

  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지난 몇 달간 계속
생각했다.
  하나님은 지난 봄 노후보를 당선시켰고, 승리에 대한
메시지를 경선 직전에 미리 주셨다. 그리고 60%의
지지도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내리막길은
계속되었다.
  나는 4월 21일 경기도 경선이 끝나면서부터 시련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5월이 되면서 이제 지루한 장마가
닥칠 것이고 그 장마를 견디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모 선수가 덩치를 불리듯 그렇게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지도
하락은 끝이 없었고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
패배했다. 장마로 둑이 터지 듯 후보 교체론, 단일화론이
나오고 연쇄탈당이 이어졌다.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일을 하시는가? 나는 호기심
가득하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생각했다. 봄
경선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개입하여 선거를 승리로
이끄셨는데, 겨울 본선에는 당신이 만든 승리를 무위로
돌리는 패배를 과연 용인하시는가. 봄 경선으로 족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대선승리까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개입했으나, 경선 이후로 후보를 비롯한 우리가
자만하거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족하여 대선에는 도움을
주시지 않는 것인가. 경선과 본선을 분리하여 그것을
감당할 주자를 따로 세우시는가.....

  나는 어떤 경우든, 최악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다. 작년 봄 그렇게 강렬하게 정이의
병을 낫게 해주신다는 메시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이가 낫지 않은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고, 더
좋은 시기를 생각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전례를
생각하면 대선에서도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이루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보가 떨어진다면 하나님의
진실성에 대해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회의가 일듯하다.
하나님은 변덕이 심하신 분이 되고, 신실함에 대해 우리
인간의 생각과는 다른 분이 된다. 하나님은 과연 변덕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인간의 처지와 환경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인가. 나는 하나님이 후자와
같은 분이길 원했다. 당신이 한번 선택한 사람은 그
사람을 바꿀지언정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는 않으시는
분이길 바랐다.  한번 뜻을 보여주신 것은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길 원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겠지만....

  또한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사람이 당신의
일을 맡을 수 있게 되기까지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시는
분이다. 지난 경선 때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은 노 후보를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또 훈련을 시키고 계시다. 지난 밤
수많은 사람이 말한 것처럼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들었다. 쇠가 불과 물을 번갈아 가면서
연단되듯이. 노 후보는 더욱 겸손해지고 넓어지고
단련되었다. 이무기가 물 속에서 단련되고 그 과정에서
여의주를 만들고 철갑같은 비늘을 만들 듯이, 노후보도
이무기에서 이제 용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아버지는 신실한 분이다. 내 마음은
변덕스러우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내 판단은 오류
투성이이나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다. 사람을 보는 눈도,
정세를 읽는 눈도,..... 하나님은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지
변화되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뜻대로 변화시키는
분이지 뜻이 변화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신실하시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과 관련하여 성경의 예를
떠올렸다. 사울왕과 다윗을 비교한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다. 그러나 새로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사울을 폐한 뒤 다윗을 왕으로 만들었다.
사울은 ‘택함’에서 ‘버림받음’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뜻이 변화되었는가? 나는 여론조사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는 사울에서 다윗으로 하나님의 뜻이
변화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울의 탐욕과 시기,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 하나님 의존이 아닌 귀신 의존에
대해 하나님이 눈을 돌리고 실망하고 후회하고, 따라서
마음이 합한 다윗에게 새로이 기름을 부었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교만하지 않고, 정직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한다고.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에게
사울은 사울의 역할이 있었고, 다윗은 다윗의 역할이
있었다. 다윗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단련을
시키는데 사울이 악역을 담당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 악역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하는 사람에게 악역을 맡기신다. 비록
악행으로 악역을 담당했지만,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도, 다윗도 사울을 존중했다. 시신을 처리할
때까지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변덕의 아버지가 아니라 신실한
아버지이다. 신실한 아바 아버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 하나님의 뜻이 헷갈릴
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공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다. 진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거룩과 성결의 하나님이다. 거룩하고
성결한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2002년 12월 4일 수요일

  온누리교회 인터넷에서 어제, 오늘 계속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한 큐티 메일이 날라오고 있다.
마음에 꼭 와 닿는다. 시편 89절 전반부에 대해 어제는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이라는 주제의 큐티가
왔고, 오늘은 그 후반부에 대해「언약을 성실히
수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의 큐티가 왔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여호와여
주의 기사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주는 저희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내 손이 저와 함께 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이다.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2002년 12월 17일 화요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고보서
4:2-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2002년 12월 25일 수요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듯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본격적으로 실행하자. 작년 봄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의 일을
하라’라고 하신 그 일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후보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임을 믿고 어떤 일을
맡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노무현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이다. 나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성실히, 깨끗이 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임무를 완수했듯이 나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경선이 끝날 무렵에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한 선거였다.
노무현의 선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거였고, 새롭게
등장한 국민의 선거였다. 노무현의 승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승리이고 국민의 승리이다. 우리는 한 일이
없다. 따라서 캠프의 어떤 사람도 공을 내세울 수 없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드라마는 선거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선거를 1주일 앞둘 때까지 정몽준은 움직이지 않았고,
선거를 며칠 앞두고는 미사일을 실은 북한의 상선이
미국에 의해 나포되었으며, 북한의 핵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설상가상 선거운동마감을 1시간 반 앞둔
시점에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했다. 선거일 새벽까지
엎질러진 물을 담으려 노력했으나 허사였고, 쓰라린
가슴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매달리고 전화기에
매달렸다. 오후 3시까지만 해도 승리의 전망보다는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투표율은 낮았지만 출구조사에서도 개표에서도 우리는
모두 이겼다. 저녁 9시를 넘기며 승리가 확인되었고
당사에서도, 거리에서도 기쁨이 넘쳐났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악함을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을
주시고 언약하시고 들어 쓰시기 위해 우리를 이끌고
가신다. 당신이 쓰실 수 있을 때까지 단련을 시키고
성숙시킨다. 정몽준의 지지철회 뉴스를 접하자 나는
하나님이 노 후보를 이제 마지막으로 단련시키고 계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마지막 연단이었고, 이로
인해 노후보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지난 1년간, 아니
지난 10여년 간 하나님은 노무현을 얼마나 고통스럽도록
연단시켰는가. 뜨거운 풀무와 찬물에 번갈아 담그기를 몇
번이나 하였는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은 노 후보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난
일년간의 드라마를 어떻게 인간이 각본 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기적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는가. 지난 1년 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가.
  경선 때 생각했던 꼭 같은 생각을 정몽준의 지지철회
직후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이기면 그것은 하나님이 향후 5년간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아마도 국민통합을 통해 통일을 이루려
계획하고 계시다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 계획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모세와 다윗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패배했다면 우리 사회전체에,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감과 무력감이
번져나갔겠습니까. 살아계시고, 신실하시고, 우리의
부족함과 악함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들어 쓰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2002년 12월 26일 목요일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선대위에 참가했던 사람 거의
모두가 모여 1박2일간 연수를 했다. 노무현 당선자가
50분간 강연을 했고 당신이 수없이 고민하고 경험을 통해
다듬어온 국정운영의 구상을 밝혔다. 강연의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고백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노무현 당선자로 인해 기쁘다.  


2002년 12월 29일 일요일

  대선이 끝난 지 열흘이 지났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해야될 일들로 고심이 된다. 나의 인사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하나님만 믿고 어떤 일이 주어지든
그 일에만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얻기 위해 억지로 신경을 써야 하는가. 경선
직후에 있었던 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주위에서 어떤
사람은 前者를 권하고 어떤 사람은 後者를 권한다. 그러나
오늘 주일 예배시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박광석 목사를
통해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셨다. 모세가 죽은 뒤
이제는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어진 여호수아, 요단강을
앞에 두고 막강한 가나안족을 정복해 들어가야 할
여호수아,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생명과 미래가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에 두려워 떨고 힘겨워 쫄아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테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 말씀을 들으며,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참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느낀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에
나는 감격하고 울먹인다. “내가 너로 하여 네 민족을
구원하리라.”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의 일을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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