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85

일시:7/28/2017 

대표기도: 찬송가: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 


1.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월요일 24일날 보스톤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중국 선교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중국선교 보고는 다음 달에 날짜를 잡아서 하겠습니다. 우선 선교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한가지 이야기 하겠습니다. 


여행이란 어떤 여행이든지 피곤하고 힘이 드는데, 집에 돌아 와서 쉬니 참 좋았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메일을 열어서 처리했습니다. 의료보험, 메스헬스 메일이 왔는데, 열어보니 지난 5월에 리뉴얼했던 의료보험이 몇 가지 정보가 누락이 되어 있어서 처리할 수 없다는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10일 안에 누락된 정보를 보내지 않으면 메스헬스가 리뉴얼이 될 수 없다는 편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6월 중순에 온 편지인데 한 달이 훨씬 지난 터라 메스헬스 의료보험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일말의 걱정과 염려가 마음에 생겨 났습니다. 내일 그러니까 화요일 날 아침에 메스 헬스에 전화해서 늦어진 경위를 설명하고 누락된 개인 정보를 보충해야 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시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걱정 거리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침대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 거리면서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주님의 손에 이 문제를 놓습니다 라고 기도하니 마음이 평안해 지고 곧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화요일 아침 10시경에 편지에 있는 넘버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직도 프로세스 중이라서 누락된 정보만 넣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선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무슨 정보가 누락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번에 나에 대한 정보만 기록했던 것 같았습니다.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의 정보도 section 2에 모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누락된 정보를 주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customer service로 전화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15분을 기다리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옵니다. 끈기 있게 기다리자 10분 정도에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전화로 누락된 정보를 채워 넣는 담당자가 아니라고 해서 다른 담당자에게 전화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여기는 45분을 기다리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기가 막혀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침 11시가 훌쩍 지났기에 빨리 장을 보아 와야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H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의료보험 회사에 전화를 시도했지요. 의료보험은 절실한 문제인지라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 내 마음이 묶여 있을 것 같아서 한시 바삐 해결 해 농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담당자가 여자분이신데 악센트를 들으니 흑인이나 히스페닉이었습니다. 자초 지종을 다시 설명했더니 누락된 부분만 보충하면 된다면서 다시 커스터머 서비스를 연결하는 거였습니다. 또 15분을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중되면서 이 일이 처리 되자면 또 몇 주가 흘러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내일 당장 혈압약을 받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누락된 부분을 다시 기록해서 우체국 메일로 보내야 하는가 그러면 몇 주가 또 걸릴 텐데 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이 문제를 주께서 처리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전화를 끊고서 다시 처음에 연락했던 그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액센트가 없는 백인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담당자는 나에게 자신에게 누락된 정보를 주면 바로 처리해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Korean Interpretor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합디다.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국말 통역자를 통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Korean Interpretor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만약 Korean Interpretor가 없었다면 복잡한 내용을 내가 다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그 담당자가 친절하게도 그 자리에서 모두 처리해 주어서 내가 그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첫 번째 담당자나 두 번째 담당자가 전화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성가신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일을 처리하는데 약 1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담당자의 친절함이 없었더라면 적어도 그 문제로 2주간은 마음의 짐을 졌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이나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새삼 그 담당자의 친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담당자로서는 하나의 작은 친절이었지만, 내게는 커다랗게 다가오는 그런 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인 내가 나이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적인 어려움이든지 아니면 영적인 어려움이 든지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분들, 그런 분들을 만나면 하나님이 내게 그들을 도우라고 내 앞에 앉혀 놓았다는 것으로 보고 거부하지 말고 무조건 친절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구처럼 말입니까? 선한 사마리아 인처럼 말입니다. 보스톤에 도착하면서 겪었던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2. 당신은 돌아갈 영적 고향이 있는가? 천국이 실재한다고 믿는가? 실상과 허상,거울과 창문-천국은 실존하는 세계이다. 천국은 내가 이럴 것이다라고 지금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세계다. 천국은 허상이 아니라 실상의 세계입니다. 천국은 거울에 비친 세계가 아니라 유리창 너머에 보이는 세계입니다. 천국은 내 마음이 공상하면서 상상하는 세계가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이런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골3:1-2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아가라는 주문입니다. 위의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지요.하늘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것을 가리키지요. 온 우주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을 종결하고 영원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이민을 가는 것으로 비유됩니다.우리도 땅에 살면서 늘 천국 간다 천국 간다고 하면서 그 천국이 어떤 곳인지, 그 나라에 들어 갈 때에 이 땅에서 무엇을 준비해 가지고 들어가야 할 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들락날락하면서 늘 천국 간다 천국 간다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세상을 떠나 영원세계에 들어가 보니 지옥이라면 이거 뒤로 물릴 수도 없고요. 큰 낭패이지요. 또한 천국에 들어갈 때에 천국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기초적인 생활 준비도 안한 채로 들어간다면 천국서 거렁뱅이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 땅을 떠나서 영원 세계에 들어 갈 때에 천국에 가지고 갈 것을 많이 준비해서 들어가야 겠지요. 이민 갈 때에 돈을 많이 들고 간다면 고생을 하지 않듯이 우리들이 천국 들어갈 때에 천국 살림 살이에 필요한 것을 많이 가지고 들어 가야 겠지요. 


이 땅에서 삶을 종결할 때에 내가 저 영원세계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을 때에 땅에 남겨 놓아야 할 것이 있고,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돈, 권력 같은 세상 것들은 모두 죽을 때에 땅에 놓아 두고 떠납니다. 돈이나 물질은 땅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소유물일 뿐입니다. 당신이 이세상을 떠날 때에 저 영원세계에 가져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것이고, 그것은 골로새서 본문이 말하듯이 위의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하루 믿음 안에서 살면서 이루어 가지고 있는 예수의 형상은 영원히 내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만들어진 성품도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고난 가운데서 연단된 내 모습, 내 신앙 인격은 영원히 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모습, 남과는 구별되는 나 자신의 독특한 그 모습을 가지고 나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가장 고상한 지식 그것이 무엇일까요? 물리 법칙, 경제 법칙? 모두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깨달아 안 예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빌3:7-9a절의 바울의 고백: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이지요. 또한 당시에 다소에 있는 일반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또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기까지 했습니다. 종교적인 열정도 뛰어났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만나고 믿고 알고 나서부터는 그런 모든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배설물, 즉 분토 만도 못하다는 가치 판단을 내렸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어서 이전의 자랑거리들을 무엇으로 여겼다고요? 해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해롭다는 것은 이전에는 높게 평가했던 것을 이제는 무가치 한 것으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7절에서는 여겼다는 동사가 현재완료형입니다.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부터 옥중에 투옥 되어 있어서 빌립보서를 쓰던 당시까지 바울은 변함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8절은 여겼다는 동일한 동사를 현재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죄수가 되어서 감방에 갇혀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이전의 자랑 거리들을 모두 무가치 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여기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빌3:8절-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뛰어난)지식이다. 가장 뛰어난 지식이다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뛰어난 지식이라는 바울의 가치 판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학문의 대상으로 탐구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영과 영으로 대면하여서 만나서 그와 교제를 나누고 함께 함을 통하여 알게 되는 예수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런 체험적인 지식은 꼭 신학 대학원에 들어가서 신학 공부를 해야만 얻어지는 지식이 아닙니다. 이런 체험적 지식은 나의 일상적인 삶의 전 영역 속에서 경험되어지고 알아 지는 신 지식입니다. 밥을 먹다가도, 직장의 일을 하다가도, 부엌에서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하다가도 문득 문득 깨달아 알아지는 지식입니다. 이런 지식은 우리의 지성을 사용해서 알아 지는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하여 문득 문득 아 우리 주님은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 말씀을 듣다가, 혹은 금요 기도회 시간에 기도하다가 문득 문득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 깨달음을 넣어 주십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자라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영과 영으로 만남으로써 영적인 성장을 쉬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영적인 성장을 쉼없이 계속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또한 매 주일 마다 이전보다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세상 것이 영원한 것인 줄 알고 그것 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서 한 세상을 산 사람들은 땅을 떠나는 순간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고 한탄하면서 영원 세계로 들어갈 것이지요. 영적인 거지로 영원세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영적인 거지가 어떤 상태인지는 땅에 살면서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영적으로 부요한 자와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차이가 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우편 강도나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천국에서 똑 같은 상태라면 그것은 불공평하지요. 천국 안에서 영원까지 지속되는 어떤 차이가 분명하게 있겠지요. 그런 차이가 없다면 이런 고난 스러운 삶을 살 필요가 없겠지요. 내 좋은 일 하다가 그냥 천국 들어가는 것이 최상의 삶이 되겠지요. 뭔가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내 좋은 일은 내려 놓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천국 들어가지요. 


지금 나의 삶에서 우리는 구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영원세계에 가지고 들어갈 것과 땅에 남겨 두고 가야 할 것을 구별해 놓고 있어야 합니다.돈,명예,세상권세, 학식, 내 몸, 아들과 딸, 내가 아끼는 귀중품들-모두 땅에 놓아 두고 갑니다. 땅에 남겨 두어야 할 것들을 사용해서 하늘 세계로 가지고 들어 갈 것을 풍성하게 만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영적 지혜라고 부릅니다. 영적인 투자를 잘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영적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리하고 머리 회전이 잘 되어서 돈을 투자 잘 하여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주위에 많지만 그러나 영적으로 지혜로운 분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돈을 한 번 예로 들어 보지요. 우리가 땀 흘리고 힘들여서 번 돈은 한 푼도 죽은 다음에 하늘 세계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내 이웃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한 것은 내가 하늘 세계로 들어 갈 때에 가지고 들어 갈 수 있는 돈입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들인 물질, 명예와 또는 우리의 몸, 목숨을 희생하는 성도들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을 희생하는 것은 영적인 지혜가 있는 분들 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듯이 여기는 돈이나 물질은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할 따름입니다. 돈이나 물질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돈을 왜 벌까? 라고 어떤 친구가 자기 친구에게 물으니 그 친구 왈 –너 밥 안 먹고 싶나? 라고 되물어 왔습니다. 밥을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업을 영어로 job이라고 합니다. 쩝쩝하고 job이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기 위해서만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밥값'을 넘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직업을 갖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원까지 남을 일을 우리의 직업을 통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직업을 가지고 하신 것은 그 직업을 통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세계로 들어갈 때에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있지만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땅에 남겨 놓아 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자취입니다. 내 자취, 내 영광, 내 이름을 세상에 남겨 두는 일이 아닙니다. 옛말에 호사유피요 인사 유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남기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약속의 땅에서 이곳 저곳을 다니는 순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한 곳에 이르러서 했던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제단이란? 이 제단 위에서 그는 소와 양을 잡아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 할 때에 그는 그가 세운 제단을 허물지 않았고 그 자리에 돌로 쌓아 놓은 제단을 남겨 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나고 없었지만, 그 제단은 남아서 주위에 있던 이교도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아브라함처럼 예수의 자취와 흔적을 남겨서 후진들로 하여금 그 자취가 예수를 증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세례 요한도 물이 많은 요단강 건너 편 살렘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일찍이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목베임을 당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일찍 순교 당하여 땅 위에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렘에 와서 세례요한을 기억했고, 세례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증언했던 증언이 참이라고 인정하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목베임을 당하여 죽었지만 그가 예수에 대하여 했던 증언은 남아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요한 복음 10:40-42절<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21세기를 살아 가는 우리들:이곳 보스톤 하늘 아래에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라는 인간이 이 땅에 왔다가 갔다는 흔적 말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했던 수고와 희생과 눈물들이 세상에 남아 있어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예수를 믿게 되는 그런 흔적을 남겨야 겠지요. 훗날 하늘에서 내가 그를 만났을 때에 그가 나에게 나는 당신의 그 발자취 때문에 예수를 만나게 되어서 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을 들어야 겠습니다.  


나의 전도를 통하여 그가 천국에 왔다면 그는 바울이 말한대로 천국에서는 그가 나의 면류관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4장 1절에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이지요. 루디아라는 인물, 감옥의 간수 가족들, 그리고 점하는 귀신 들렸던 여종, 이런 분들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지요. 바울에는 이런 분들이 천국에서 자신의 머리에 놓이게 되는 금면류관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사람의 한 평생이 몇 만년, 몇 십만년을 살지 않습니다. 100년간의 짧은 인생살이를 삽니다. 그것도 절반을 살았기에 이제부터는 내리막길 인생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내리막길 인생살이에서 우리의 눈이 열려서 진정으로 영원까지 남아 있을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하고 힘 다하여서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약속을 받았나? 없는데요 하시는 분들, 성경 말씀이 모두 약속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금광과 같습니다. 이 금광 속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금을 캐십시요. 황금덩어리의 약속들이 성경 곳곳에는 묻혀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일종의 영적인 원리, 영적인 법칙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이 약속들은 영안이 밝아야 비로소 보이지요. 마6:33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불신 세계에 살 때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믿음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내가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적용되는 영적인 법칙입니다. 이 영적인 법칙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지구인들은 모두 중력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무식하여서 중력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하여서 중력장이 적용되지 않나요? 내가 지구에서 살면서 중력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중력법칙이 적용되지요. 중력이라는 물리법칙은 지구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마 6:33절의 영적인 원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것은 믿음 세계에 들어온 우리들이 받아서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육신 생활에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모든 삶에서 선택하는 일을 할 때에 priority, 우선권을 어디에 두라고요? 하나님께 두라는 말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물질적인 부요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현재에 하나님 섬기면서 살 때에 당신은 어떻게 섬기는가? 항상 하나님은 세 번째가 아니던가? 3등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프라이오러티 3번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항상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1등은 내가 원하는 것, 2등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3등은 뭐예요. 시간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것! 우리들은 하나님 섬길 때에 자투리를 가지고 섬기지 않았는가? 시간이 나면 하나님께 드리고, 번 돈도 나를 위해서 쓰다가 남으면 드리고 모자라면 안 드리고, 입신양명을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주님 위해서 정작 시간을 쓸려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아서 차차 섬기지요 하면서 미루어 버리지요. 자식들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정렬을 쏟아 부으면서 주님 위해서는 인색하기 그지 없지요. 이러니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더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하시는 하나님! 물질적인 복은 하나님이 덤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못 만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안 해 주는 것에 대하여 원망의 화살만을 쏘아 부쳤지요. 하나님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냐고 말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살고 싶은가? 하나님을 프라이오러티 넘버 one에 두고 삶을 살아 보라! 그러면 풍성한 물질의 복을 누리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덤이라는 것은 조건이 없이 주는 것이지요. 구약 인물 중에서 이 영적 원리를 따랐더니 부귀 영화를 덤으로 받은 분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그런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1천 마리 양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는 말씀을 들었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무엇을 구했나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구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하나님이 덤으로 무엇을 주었나요? 부귀영화도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 시대처럼 부강했던 시절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왕이 통치하던 시절은 이스라엘의 황금기라고 부르지요. 가장 부귀영화가 컸던 시절입니다. 솔로몬 왕이 부귀영화를 받기 위하여 했던 일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마음이 기뻐서 덤으로 주었을 뿐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함께 부귀영화를 덤으로 받았습니다. 부귀 영화를 덤으로 받기 위하여 솔로몬이 했던 일은 오래 살게 해달라는 청원도 하지 않았고, 또한 원수의 멸망도 요구하지 않았고, 오직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왕인 다윗이 정복 전쟁을 하여서 이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강하게 지켜 내기 위해서는 사람 사이에 싸움과 알력을 해결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간구였습니다. 프라이오러티 넘버 완을 하나님 나라와 의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로 솔로몬이 말년은 신앙의 길을 이탈하여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이 이전에 주셨던 부귀 영화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쫀쫀하지 않습니다. 주었다가 빼앗아 가는 사람은 치사한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에서 프라이오러터 넘버 완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구하는 세상 것들을 덤으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첫번째 놓아 두지 않은 것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잘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말하면 늘 그런 죄악들을 나열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런 자잘한 죄악에 대한 용서의 청구보다는 하나님을 내 삶에 첫번째 자리에 두지 않는 것에 대한 회개가 선행해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돌아오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자기의 하나님을 뒤에 두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뒤에 두고 떠났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예언자들이 외쳤습니다. 구약에는 회개하라는 전문 용어가 안 나오고 대신에 돌아오라는 말이 나오지요. 신약 시대가 되면서 세례 요한이 신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라고 외쳤지요. 또한 우리 주님도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과 우리 주님 예수님의 대갈 일성인 회개하라는 음성은 오늘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들립니까? 우리의 삶에서 프라이오러티 넘버 완을 예수에게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던가요? 이제는 회개하라는 예언자들의 음성과 세례요한의 음성과 우리 주님 예수의 음성이 의미하는 바는 내 삶의 첫번째 자리에 예수님을 놓아 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덤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십시요. 영원하지 않은 것을 희생하여서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영적 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에콰도르의 선교사-짐 엘리엇/1956년 29세의 엘리엇과 그의 동료 4명이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남미의 에콰도르의 아후카 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떠났습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렸습니다. 그들은 몇일 간 해변가에 머물면서 기도하면서 선교 전략을 짜고 있었을 때에 아후카 족 전사들의 습격으로 모두 죽었습니다. 복음을 미쳐 전하기도 전에 무참히도 아후카 족 전사들에게 참살당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떠들었습니다. 그것은 낭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사용하여서 호전적인 아후카 족을 변화시켰고 지금은 그 부족들에게 교회 마져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바로 짐엘리엇과 그의 동료 4명의 순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29살의 짐 엘리엇이 남긴 말이 이 말입니다: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을 마치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얻기 위하여 전심전력하고 있는 영적으로 우둔한 자들입니다. 


이태석 신부:젊은 나이에 아프리카의 남 수단의 헐 벗고 버려진 이들을 섬기다가 말기 대장암이 발병해서 죽었지요.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이웃을 섬기다가 죽었습니다. 칭찬하면서 그의 덕을 기리는 사람도 있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바보 의사라고 말입니다. 그는 한국 땅에서 의사로서 한 평생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희생할 줄 아는 지헤로운 성도였습니다. 우리들도 바보 누구 누구라는 소리를 좀 들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고자 합니다. 복음송: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땅에서 호사하고 평안한 삶을 추구하십니까? 땅의 것들은 세상 떠날 때에 모두 놓아 두고 갑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십시요. 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에 가지고 가야 할 것을 풍성하게 만드십시요. 땅의 것,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사용하여서 가지고 갈 것을 풍성하게 만드는 삶을 사십시요. 물질과 시간과 몸을 사용해서 내 영혼, 내 인격, 내 성품을 변화시키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는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우선 순위 1번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맨 꼴지에 놓아 두신 분들은 지금 이 시간 회개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우선 순위 1번에 두심으로써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세상 복들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켐연장

2017.08.01 07:16:48

2017년 7월 28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728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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