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93

일시:9/22/2017 

기도: 

찬송가: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1. 지난 주에 기도는 리모트 콘트롤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땅에서 내가 맺거나 풀면 하늘에서는 곧 바로 맺어져 있게 될 것이고, 풀리어져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던가요? 물론 곧 바로 기도한 결과가 내 손에 쥐어져 있을 때가 있는 가 하면 어떤 때는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1년, 2년 10년 20년을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기도한 결과를 내 손에 기도한 후에 곧 바로 가질 수 없는가 이 문제 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게 되지요. 


우선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사탄.마귀의 방해 공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하늘에서 응답하셨지만, 그 결과가 내 손안에 들어 올 때까지는 사탄의 방해 공작 때문에 기도 응답이 지연됩니다. 


그 증거를 다니엘에게서 찾아 봅시다; 

단 10:12-14절<그가 내게 이르시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 (여기서의 군주는 미가엘과 싸우는 바사와 헬라의 천사적 군인데, 지역을 지배하는 어둠의 영을 가리킨다. )가 이십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첫째가 되는 군들 중의)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다니엘 9장에서도 다니엘이 금식을 했는데, 다니엘 10장에서도 금식을 합니다. 언제? 바사왕 고레스 제 3년은 포로 해방 선언이 있고 난 지 2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민족이 포로에서 해방되고 났으니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신의 백성인 유대 백성들에게 큰 곤경이 임할 것을 다니엘이 인지하고 나서 다니엘이 또 결심하고서 금식하면서 동족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했습니다. 몇 일 동안 말입니까? 2절에는 세 이레 동안 떡도 고기도 포도주도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세 이레는 삼 주간을 의미합니다. 3주간의 금식 기도 끝에 성육신 하기 이전의 인자이신 우리 주님이 다니엘에게 나타났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직접 나타나셨지요. 그리고 다니엘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12절에도 금식기도 시작하던 첫 날에 기도 응답은 하늘에서 내렸지만, 그 응답이 땅에 있는 다니엘에게 전달 될 때까지 3주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렇게 걸렸습니까? 사탄마귀의 방해 공작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는 공중 권세 잡은 자라고 에베소서 2:2절에 기록되어 있지요: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탄 마귀는 하늘에서 쫓겨난 권세들이라 공중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흑암의 천사들, 흑암의 지배자들이라는 의미이겠지요. 하늘에서 내려 오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놈들이 공중에서 방해하기에 응답이 늦어 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그리고 어둠의 영과의 싸움을 무엇이라고요? 공중전이라고 부르지요. 공중 권세 잡은 놈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3절에는 바사 왕국의 군주(단수). 바사 왕국의 왕들(복수형)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사국을 통치하는 것은 바사국왕들입니다. 그런 바사국 왕들의 생각과 사상과 감정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흑암의 권세인 어둠의 영들입니다. 어둠의 영들은 어떤 지역을 장악하여서 다스리는 영들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탄의 하부구조이지요. 바사국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영들은 바사국 왕들을 당연히 지배해야 겠지요. 물론 그 어둠의 영을 그 지역에서 추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둠의 영들이 지배하고 활동하는 것을 일시 정지 시키는 일을 위하여 천사장 중의 하나인 미가엘이 도와 주었습니다. 미가엘은 가장 강하고 힘 있는 천사이지요. 그 일을 하는 기간이 21일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21일일만에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는 것을 다니엘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작정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하는 그날에 하늘에서는 벌써 하나님께서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는데, 그것이 내 손에 들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사탄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공중을 지나 와야 합니다. 공중에는 어둠의 영들이 활동하면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견제하거든요. 그런 어둠의 영들을 우리 주님은 넉넉히 통제하십니다. 그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권세를 이겨 놓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 가지고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안 들으신다고 의심할 일이 아니고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내 손안에 그것이 놓여 질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작정하고 기도하는 첫 날 이미 하나님은 응답하셨는데, 기다리고 인내하면 그 결과가 내 손에 쥐어져 있게 됩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극장에서 연극을 보았던 어떤 귀부인 이야기 입니다. 극장에서 값나가는 귀중품을 잃어 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잃어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했습니다. 혹시 극장 바닥에 자신의 귀거리를 흘린 것 같은데 찾아 보아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지배인이 잠시만요 하면서 하면서 뒷정리 하는 분들을 부르면서 귀거리를 혹시 못 보았는 지를 체크했습니다. 다행히도 청소하시는 분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지배인에게 귀거리를 찾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지배인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전화를 집어 들고서 부인 우리가 귀거리를 찾았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이미 전화는 끊어져 있었습니다. 


둘째로 기도 응답의 지연은 사탄마귀의 방해 공작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기도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지연시키나요? 기도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주시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기다리게 하면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당장 그 자리에서 채워진다면 궁핍함으로 일어나는 고난과 시련이 없을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연단되거나 그것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 지는 그런 결과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마다 넘치게 채워준다면 아이들이 잘못 될 수도 있지요. 아이들이 채워지는 그것을 귀한 줄 모르게 되지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응답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궁핍함 속에서 하루 하루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기도하는 동안 얻어지는 영혼의 성장을 이룰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기도 응답의 시기를 지연시키기도 하십니다. 기도 응답이 지연 될 수는 있어도 기각 되지는 않습니다. 기다림! 이것은 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아이들은 기다림을 못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당장 눈 앞에 있어야 합니다. 기다림을 못 참아 내지요. 


구약 성경으로 돌아가 보지요. 


구약 성경. 에스겔 36:37-38절<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같이 많아 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에스겔 예언자는 바벨론 포로 전기 예언자입니다. 다니엘 동시대인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포로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초창기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바벨론 포로 해방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 버렸고, 예루살렘 성벽은 군데 군데 무너져 버려서 성벽은 있으나 마나 하는 정도가 되어 버렸고, 가옥은 깨어지고 무너지고 불타 버렸고, 수 많은 예루살렘 주민은 포로로 잡혀 가버렸지요. 그야말로 예루살렘은 황폐한 도시, 무너진 도시, 썰렁한 도시가 되었지요. 그런 예루살렘 도시를 하나님께서 이전처럼 회복시키겠다는 소망의 말씀을 바벨론 포로 전기 예언자인 에스겔에게 주었습니다. 포로 해방된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황폐한 성읍을 재건하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 가는가요? 숫자는 표현 되어 있지 않지만 ~ 절기 때에 희생되는 양의 숫자 만큼이나 많겠다는 말입니다. 유월절 기간 동안에는 수십만이나 되는 양들이 희생제물로 드려 지지지요. 


자 그렇다면 이런 약속을 받았다면, 이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허락이 주어졌습니다. 땅에서 집행 되고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야 말로 70년의 세월이 경과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어린 아이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때에 결과를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기도 안해도 되는가? 아니지요. 계속해서 손에 그 결과를 쥘 때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달라고 졸라야 합니다. 기도는 무엇이라고요. 졸라 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잊지 말고 이루어 달라고 주장해야 하지요. 만약 안 이루어 주시면 어떻게 하라고요? 하나님 죽었다고 일간지에 광고 내겠다고 하나님을 위협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70년 동안 기다리게 하시다가 유대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무엇이라고요? <제2의 출애굽>이라고 부르지요. 제 1출애굽은 그야말로 그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모세의 영도하에 애굽을 탈출한 것을 말하지요. 북방 땅,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서 예루살렘으로 신의 백성이 돌아 오는 것을 제 2출애굽으로 부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족속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들을 섬기는 데 빠져 들자 하나님이 바벨론을 보내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도자급의 사람들을 잡아 가 버렸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유다 백성들이 남아 있기는 했는데 별볼일 없는 하층 구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과 또는 기능공들과 지혜와 지식이 있는 귀족 계급의 사람들을 바벨론은 붙들어 가버렸습니다. 붙들어 가버린 이유는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 있는 하층구조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은 무화과 나무이고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은 그야말로 나쁜 무화과 나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지요. 잡혀간 사람들이 좋은 무화과 나무이고, 남아 있는 그 땅의 백성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 나무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잡혀간 사람들을 곧 바로 풀어서 해방하여서 예루살렘으로 데려 온 것이 아니고 몇 년 걸렸다고요? 70년간의 긴긴 포로 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가지 마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이 70년만에 일어난 다는 것을 예언했지요. 그 예언 대로 되었습니다. 70년은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왜 그런 긴긴 기간이 필요했는가요? 신의 백성의 영적인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포로 생활의 고달픔을 통하여 그 고난을 통하여 영혼이 연단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차 신의 백성 가운데서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태어 나게끔 하나님께서 신의 백성의 신앙을 연단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기간이 몇 년이라고요? 70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긴긴 기간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믿음을 연단시키시고, 오랜 후에 그 바벨론 포로의 후예 들에게서 메시야를 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기록되어 있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하물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만큼의 영적인 성장이 일어난다면 곧 바로 우리에게 기도 응답의 결과를 주시겠지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데 그의 사랑 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왜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을 금하시겠습니까? 단지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에 그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이 홀드 하실 뿐이시지요. 


막11:24절<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하나님의 약속! 믿음으로 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실 믿음으로 기다리면, 언젠가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때에 내 손에 그 결과물을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가?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는 자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응답 받는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정말 이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로 기도하는 분들에게는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약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이 문맥에는 병 낫기를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낫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어찌 병 낫게 하는 일에만 머물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삶의 전 영역에서 내가 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꼭 들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열 두 해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댐으로써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뒤에 가까이 다가가서 옷 가에 손을 댔습니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는 자기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았다라는 말씀 선포가 없어도 예수님의 옷 가에 손만 대도 병나음이 일어나리라는 확신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수 기도를 안해 주셔도 병나음이 일어 나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이지요.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만 대어도 자신의 병이 치유되리라는 확신은 곧 그대로 병나음으로 일어 났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시도했더니 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또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도 그렇지요. 그의 하인이 병들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 하인을 고쳐 주시길 요청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을 자신은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라고 말하지요. 단지 그 자리에서 말씀만 하시면 자기의 집에서 앓아 누워 있는 하인이 낫게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네 믿은 대로 되라고 선포하시자 그대로 그 하인의 질병이 치유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일어 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그대로 들어 주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십니다.  


모두 우리가 본받고 사모해야 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진 믿음이 아니고 삶 속에서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혈루증 앓았던 여인이 가진 믿음은 12년간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영롱한 진주와 같은 믿음이고, 백부장의 믿음은 군에 몸담아 살면서 그 짠 밥을 먹고 사는 가운데서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들 이곳 보스톤 땅에서 삶이 광야 같은 삶 일진데, 이곳에서 능히 큰 믿음의 사람이 만들어 질 수 있는 토양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들이 만들어져 가기를 원합니다. 너무나 큰 믿음이기에 세상이 이런 믿음의 사람들 가두어 둘 수가 없는 믿음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생활고 때문에 걱정 근심이 일어납니다. 당장 내일 먹을 거리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염려가 일어납니다. 온갖 종류의 염려와 근심을 어떻게 이겨 낼 것인가? 믿음의 기도만이 생활고를 위시하여서 모든 염려 근심에서 해방되게 만들어 줍니다. 염려와 근심! 이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비행기에는 두 날개가 있습니다. 두 날개를 가지고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날아 올라 가기 위해서는 두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두 날개는 다름 아닌 믿음과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날아 올라가면 염려와 근심은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염려 근심에 사로 잡혀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날아 올라 갑시다. 믿음과 기도라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서 말입니다. 그러면 설치 동물, 우리의 삶에 새앙 쥐인 염려와 근심은 곧 사라지게 됩니다.


켐연장

2017.10.11 07:09:35

2017년 09월 22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9222017.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 금요기도회(12/08/2017) [1] 김영호목사 2017-12-11 10
520 금요기도회(12/01/2017) [1] 김영호목사 2017-12-07 15
519 금요기도회(11/24/2017) [1] 김영호목사 2017-11-27 23
518 금요기도회(11/17/2017) [1] 김영호목사 2017-11-20 15
517 금요기도회(11/10/2017) [1] 김영호목사 2017-11-13 21
516 금요기도회(11/03/2017) [1] 김영호목사 2017-11-07 15
515 금요기도회(10/27/2017) [1] 김영호목사 2017-10-30 38
514 금요기도회(10/20/2017) [1] 김영호목사 2017-10-23 33
513 금요기도회(10/13/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6 23
512 금요기도회(10/06/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38
511 금요기도회(09/29/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14
» 금요기도회(09/22/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10
509 금요기도회(09/15/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8
508 금요기도회(09/08/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7
507 금요기도회(09/01/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8
506 금요기도회(08/25/2017) [1] 김영호목사 2017-10-11 8
505 금요기도회(08182017) [1] 김영호목사 2017-08-21 45
504 금요기도회(08/13/2017) [1] 김영호목사 2017-08-14 34
503 금요기도회(08062017) [1] 김영호목사 2017-08-07 23
502 금요기도회(07/28/2017) [1] 김영호목사 2017-08-01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