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10

일시:1/26/2018 

찬송가:309장<목마른 내 영혼> 


본문:호5:13-6:3절 아모스는 어떤 예언자? 

공의의 예언자,정의의 예언자. 그렇다면 호세아는 어떤 예언자? 사랑의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언제적 예언자인가? 모두 주전 8세기 예언자인데, 아모스가 호세아보다 약간 앞선 예언자입니다. 이 두 예언자는 모두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예언자들입니다. 


숨어버린 하나님:하나님이 숨어 버린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떠나 숨어 버리는 것은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뒤에 숨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 숨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감추어 버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5:15절<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내 곳"은 내 자리를 말하는데, 어디를 가리킵니까? 하나님이 원래 계시던 자리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늘 보좌를 가리키겠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하늘 보좌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땅에 오셔서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계속해서 짓게 되니 하나님이 그만 땅을 떠나서 원래 계시던 하늘로 돌아가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백성들:그들의 삶의 현장에 오셨다/초월+내재 

가)애굽에서:고난 받는 현장(스네/가시떨기) 

나)광야에서:고난의 자리: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다)가나안 정복전쟁:약속의 땅을 얻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을 주셨고, 하나님이 친히 성전에 임재해 주셨지요. 


그러던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 곁을 떠나서 하늘로 돌아가셨을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합되어 있는데, 이 물질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그 이물질이 다름 아닌 죄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끼어들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가 벌어지게 합니다. 죄는 이물질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연합을 파괴하는 이물질입니다. 


어떤 죄? 5:13-14절<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 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이 구절들을 이해해야 하나님의 백성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가 있겠지요. 우선 에브라임과 유다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말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남쪽은 유다왕국이라고 부르지요. 원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하나의 나라였는데, 솔로몬 이후부터 둘로 쪼개어져서 두 왕국이 대치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병과 상처는 무엇일까요? 병은 안에서 생긴 고통이고 상처는 밖에서 생긴 고통이겠지요. 이것은 국가적으로 안팎으로 겪고 있는 고통 거리를 가리킵니다. 호세아 당시의 북 이스라엘은 6번이나 구데타가 일어나서 왕이 시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니 힘으로 왕권을 빼앗아서 왕이 된 자는 북방의 패자인 앗수르에 잘 보여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공을 바쳐야 합니다. 금과 은을 백성들에게서 빼앗아서 앗수르 야렙 왕에게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전폭적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북방의 앗수르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안으로는 온 나라에 우상 숭배가 판을 쳤습니다. 당시의 우상이 무엇이지요. 바알과 아세라! 여호와를 믿으면서도 공공연히 바알숭배하는 일을 했습니다. 신의 백성의 신앙이 이렇게 타락하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무엇입니까? 도덕적인 타락이 따라 오게 됩니다. 우상 숭배는 영적인 타락이지요. 영적 타락이 생기면 따라 오는 것은 도덕적인 타락입니다. 북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할 수준까지 타락해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순결하시기 때문에 죄악과 거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들 가운데 거하시게 끔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심령과 삶이 정결해야 한다. 또한 우리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정결해야 한다. 우리가 죄로 더럽혀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고 떠나시는 일은 우리가 능력이 부족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순수하고 정결하지 않을 때 우리를 떠납니다. 우리가 못나고 부족해서 하나님이 주신 과업을 못 이루었다고 떠나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삶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깨끗하고 순수하지 않았던 점을 찾기 바랍니다. 세상은 능력이라는 잣대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깨끗하냐로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눈이 너무나 정결하셔서 죄악을 참아 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악에 물들어 있는 나를 버리시고 나를 떠나 가기도 하십니다. 


하늘로 돌아 가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15절<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어떤 하나님? 기다리시는 하나님.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 말씀에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운다는 표현도 나오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표현도 많이 나오지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는 말이지요. 반대로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운다는 것은 저주와 징계를 내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이 떠나시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 물어보나 마나 뻔하지요. 만사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역경이 발생하고, 고난을 당하게 되지요. 


요나의 경험-바다 밑, 물고기 뱃속 

탕자의 경험-완전 거지꼴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고, 탕자는 돼지 우리 속에 있었는데, 편안했을까요? 요나는 캄캄한 어두움 속에 있었을 것이고, 탕자는 냄새 나는 돼지 우리 속에서 죽지 못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무지무지하게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반복해서 지음으로 하나님이 불편해서 우리 곁을 떠나면 우리의 삶에는 영적으로 캄캄한 어두움이 찾아오고, 또한 우리의 삶은 마치 메마른 광야처럼 되어 우리의 영혼은 목마름으로 헐떡거리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메마른 심령이 된다. 시32:3-4 삶의 반전: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내 삶은 바뀝니다. 눈물과 고통이 있는 내 삶이 변화하여 웃음과 즐거움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내 삶의 어두움이 걷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내 삶의 목마름이 해갈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들/사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질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각기 제 길로…/각자의 욕심을 따라서 제 갈 길을 막다른 골목까지 갔다는 말이지요. 이제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돌이키면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가식을 버리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무너진 그 모습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예화)어떤 화가/집 나간 탕자/거지 (예화)내가 가면 쓰고 하나님 만나러 가면… 


회개란 무엇인가? 

돌아간다:1절.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라고 보았습니다. 의지적인 결단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불완전한 회개. 참된 회개는 지.정.의 전반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예화)밤기차를 타고 가는데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면…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힘이 없다고 한탄하시는 분이 있는가? 아무리 멀리 갔더라도 그 멀리 들어간 자리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을 만날 수가 있다. 회개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은 당신에게 힘 주신다. 그 힘을 의지하여서 내려간 곳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주의 손을 붙들고 올라 오면 된다. 


내가 회개했더니 하나님은 어떤 행동을 하시는가? 나타나시는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로 한 걸음을 떼어 놓으면 하나님은 나를 맞기 위하여 하늘 보좌에서 나를 맞기 위하여 버선발로 달려 나오신다. 이것이 복음이지요.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시는가? 새벽빛/동해에 떠오르는 태양(힘차게 솟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길에는 흑암이 있다.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분들은 무엇이 참된 인생 길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어두움 가운데서 바른 길을 찾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빛을 비추이면 앞 길을 볼 수 있지요. 우리 하나님은 진리의 태양/의의 태양. 비,늦은비/비(게셈:소낙비), 늦은비(말코쉬/봄비, 이른비/요레/가을)-팔레스타인에서 농부들의 소망은 비! 겔34:26(복된 장마비). 땅이 메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심령도 하나님을 떠나면 그렇게 메말라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셔서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시지요. 


나타나시는 목적?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심령과 삶을 치유하기 위하여: 6:1절<~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치유가 일어난다. 어떤 치유일까? 죄를 지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황폐해질 대로 황폐하게 되었는데, 그런 깨어지고 부서진 심령을 치유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죄를 지어서 어둠 가운데 몇 달 몇 년을 살게 되면 심령은 만신창이가 되지요. 이런 심령을 고치고 치유하시면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치유.회복케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깊고 깊은 심령의 상처일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한 번 닿으면 곧 바로 낫습니다. 곧 바로 낫는다는 것은 2절에서는 이틀 후에 셋째 날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해변 가에 모래 사장에 모래 구덩이가 아무리 많고 아무리 깊어도 바다에서 파도가 한번 들어 왔다가 빠져 나가면 모든 해변가의 구덩이는 순식간에 메꾸어 집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의 파도가 이 시간 우리의 심령에 파도처럼 밀려 들어 오기를 바랍니다. 


한 평생 성화의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자!-코람데오!í성화의 길을 가도록! 내 깨어진 삶을 복구시켜 놓았으니 세상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그렇게 하셨나? 아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회개하고 예수 믿고 중생한 사람들은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구원 그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를 알자! 3절<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어떤 태도로? 힘써=사냥개가 사냥물을 좇아 가듯이. 사냥개가 사냥물을 좇아 갈 때에 옆을 살피면서 놀멍쉬멍하면서 사냥물을 따라가지 않는다. 온 마음을 사냥물에 집중하면서 달려 간다. 우리도 온 정성과 온 힘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두라! 그렇다면 자기의 전공, 직업을 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다. 자기의 전공과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그 공부와 일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알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를 '안다'라고 할 때 그 앎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를 안다고 할 때에 그 앎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다/'안다'/지적 인식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이 들어 있는 앎이다. 야다는 속속들이 완전하게 숨겨진 구석구석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할 때에 쓰는 단어이다. 머릿 지식이 아니라 가슴 지식이다. 내 심장(레브)으로 알고 내 인격으로 내 생명으로 내 전 존재로 아는 것을 말함이다. 성경 말씀을 탐독하여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습득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였을 때에 앎을 '야다'라고 말한다. 경험된 말씀이고 체험된 말씀을 의미한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서 얻어진 지식이 바로 이 지식이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안다(약2:19). 그러나 그 앎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서 순종하고 헌신하는 앎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고산병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는 책을 통하여, 또는 고산병을 경험하신 분들에게서 들어서 간접적으로 고산병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산소가 많은 낮은 땅에서 살다가 4천미터 이상이나 되는 산도가 적은 곳에 올라가면 몸에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숨이 가빠진다,기운이 없어지게 되지요. 고산병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왜?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4000미터 이상 되는 높은 산에 올라가 보아야 고산병이 무엇인지를 알지요. 직접 고산병을 경험해 보고 난 다음에 고산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라고 말하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험해 보고 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았다라고 말해야지요. 우리는 예수의 첫 제자들, 사도들이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사도들이 전해 준 것이 신약성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약 성서를 읽고 들어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지성적 이해라고 부르지요. 신약성서의 말씀대로 한 번 실천해 보았더니 첫 제자들이 경험한 것과 똑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영적 이해라고 하지요. 비로소 이 때에 하나님을 체험했다.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하지요.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말씀의 실재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녹아 있는 하나님을 경험해서 비로소 내가 알았다라고 바로 그 때에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 체험이 일어날 때에 비로소 영혼의 성장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을 이제야 알았다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자! 우리 교회는 이런 성도들로 가득 차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화)당신은 당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그릴 수 없다(요4:24)/여자의 모습(여성신학/눅15:8))/분노한 얼굴로 어좌에 앉아 있는 왕 (시7:11)/손과 팔이 긴 사람/당나귀 같이 큰 귀를 가진 사람(시34:15)/왕 눈을 가진 사람(히4:13)/머리 셋 달린 용가리(삼위일체)/슈퍼맨(구름을 타고 나시는 분/단7:13) 


(예화)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산성,바위,방패,피난처,망대,… 야전군 사령관으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깨달음 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줄 수가 있다. 당신의 그릇은 얼마만큼 큰 그릇인가?


김영호

2018.01.30 20:53:44

2018년 1월 26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126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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