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지난 금요일에는 야곱의 일생을 조망해 보았습니다. 야곱의 일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일생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을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중생-성화-영화> 길을 걸어 갔다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일생을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도 우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기운이 진하여 죽을 때까지 어떤 인생 길을 걸어 갔을까요? 아브라함의 일생을 믿음의 눈을 가지고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창세기에서 조망해 보면 아브라함도 그의 믿음이 성장했음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초기에는 75 아멘 신앙이라는 말로 요약할 있고, 다음에는 100 절대 신앙이라는 말로 요약할 있고, 마지막에는 적어도 116 정도의 부활신앙을 가졌습니다.  

 

아멘신앙/절대신앙/부활신앙(여호와 이래의 신앙)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을 때에 가진 믿음이 바로 절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을 통하여 이삭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있는 조건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있는 손이다. 믿음이 만한 수준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선물을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조건을 만들었다고 하여서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학이 된다.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의 백성이 소유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이 작용한다.

 

절대 믿음을 갖자. 어떻게? 절대 믿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아니다. 삶의 자리에서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져 간다.  

 

성도 여러분은 누구의 믿음 때문에 이삭이 출생했다고 생각합니까? 이삭의 출생은 사라의 믿음 때문인가 아니면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인가? 3 견해는 아브라함과 사라 분의 믿음 때문인가?

11:11-12<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알았음이라/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00살과 90살인 노부부에게 아들이 태어 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믿음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11 후반부에는 이는이라는 인과 접속사가 기적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알았음이라! 미쁘다는 말이 무엇인가? 순수한 우리 나라 말이지요.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faithful!  25년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하나님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을 믿었기에 아들을 선물로 받았다는 말이지요.    

 

11 말씀: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있는 힘을 얻었다! 구절의 주어가 누구일까? 구절을 보면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성경, 개역,개역개정,표준, 공동 번역 모두는 사라가 나이 많아 단산하였지만, 사라가 잉태할 힘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릭으로 쓰여진 본문을 찬찬히 읽어 보면 ‘잉태할 있는 힘을얻었다는 말은 관용구인데, 관용구는 여성이 잉태할 쓰는 관용구가 아니라 남성이 아내에게 잉태 시킬 때에 쓰는 관용구입니다. 구절은 아브라함이 생산하는 능력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또한 12절에도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에서도 죽은 자나 사람 모두 남성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본다면 11절은 신약학자인 메츠거라는 분이 말한 것처럼 주어는 아브라함이 되고 사라는 동반의 여격으로 번역이 됩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도, 단산한 사라와 함께, 생산하는 능력을 얻었으니, 비록 그가 나이 지났을지라도~!  영어 번역본인 NRSV NIV역본에도 사라가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자면 부부 모두 생산하는 능력이 있어야지, 남자 사람, 혹은 여자 사람 만으로는 아기를 낳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혼한지 오래되어도 아이가 생기면 불임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남편과 아내 사람 모두를 검사해 보아야 하지요. 불임의 원인이 남편에게도 있을 있고, 아내에게도 있을 있지요. 남편과 아내 사람 모두 건강하고 생산하는 능력이 있어야 애기를 낳을 수가 있지요.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의 몸이 죽은 자와 같았고, 사라도 이미 폐경기가 훨씬 오래 전에 지났기 때문에 애기를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 부부는 생산하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함께 받았습니다. 사라에게 하나님이 생산 하는 능력을 주셨더라도 아브라함이 생산하는 능력이 없다면 애기를 낳을 없잖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것은 사라와 맺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이 많아서 결코 아이를 낳을 없는 그런 몸인 아브라함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도 사라와 함께 생산하는 능력을 얻었다로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전에(2012년도) 해외 토픽에 났던 뉴우스입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96세된 노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나이가 96세이면 손자.손녀를 보는 나이가 아니라 증손자,증손녀를 보아야 나이인데, 아들을 보았다는 아닙니까? 부인의 나이는 54살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아들을 낳았는데, 어쩌다가 낳은 것이 아니고 그것도 둘째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들은 2년전에 지금의 부인에게서 낳았는데, 이번에도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이랍니다. 2년전에 아들을 낳을 때에도 94세의 최고령의 아버지라는 기록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기록을 갱신했다고 합니다. 노인이 아들이나 둘째 아들을 낳을 때에 현대 의술,예를 들면 정자를 냉동한다거나, 난자를 숙성시킨다거나, 그런 현대 의학적인 도움으로 애기를 낳은 것이 아니랍니다. 여인의 아이를 받았던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아이의 아버지가 96 노인이라는 것을 알고서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저 웃었을 뿐이다 라고 신문 기사는 적혀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비결을 물었지만, 노인은 그저 신의 뜻이다라고만 대답했더랍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았을 때도 주위의 사람이 웃었다 지요.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도 신의 뜻이지요. 70대의 노인이 간혹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는데, 어찌 100세가 되어가는 노인이 아들을 수가 있었을까요?  현대에도 신의 뜻으로 이런 일이 있을 있다면, 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을 수가 없겠지요?                 

구약을 요약하면 할망구가 낳는 이야기이고, 신약을 요약하면 동정녀, 동정녀가 낳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아들을 낳을 있게 만들었던 믿음이 어떤 믿음이라고요? 바로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25년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나 제나 실현되기를 기다렸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절대 믿음은 25년간의 긴긴 기다림 속에서 연단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늘에서 어느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속에서 비바람 서리를 겪고 다음에 얻어지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건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은 처음 아브라함이 나이 75세때이고 사라의 나이 65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있었을 때에 그를 불렀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런 절대 믿음을 가졌나요? 아니지요! 아브라함이 75 때에 가졌던 믿음은 그야말로 베이비 같은 믿음입니다. 불신자가 예수 믿는 믿음을 가지면서 가지게 되는 그런 어린 믿음을 아브라함이 가졌습니다. 이런 믿음을 아멘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후사,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지요. 약속이 12:1-3절까지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12:1-3절에는 무려 7개나 되는 축복의 조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려는 약속을 들어 보니 구미가 당기 거든요. 어떤 약속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나요?

 

12: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는지라>

이것을 일곱 가지 축복, 중의 7축복, 영어로는 seven-fold blessing이라고 부르지요.

 

번째로: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게 한다. 민족을 이루자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어야 하지요. 민족을 이루려면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많이 주겠다는 말이지요.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약속이지요. 지금 나이가 75 인데도 후사가 없으니 말입니다.

둘째로:네게 복을 주리라

셋째로: 이름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겠다.

넷째로:너는 복이 되리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

다섯째로:너를 축복 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

여섯째로: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다섯째 여섯째는 안전 장치입니다. 종교와 문화가 다른 가나안 땅에 들어 갔을 때에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지켜 주시는 장치이지요. 외부인인 아브라함에게 원주민들이 위해를 가할 수가 있지요. 원주민들의 적대감을 없애 주시고 아브라함을 지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해외 선교사들이 받아야   약속이지요.

일곱째로: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야 말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들어 오게 하는 통로로 삼겠다는 약속이지요. 마땅히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가져 오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중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마음에 닿았기에 아브라함은 아멘하면서 덥석 받았지요. 이것을 아멘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송이 같은 약속을 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아브라함은 들어 갔습니다. 믿음의 모험.

 

아멘의 신앙은 히브리어로 아멘이라는 글자를 쓰고, 절대신앙은  히브리어로는 바타흐라는 동사로 표시합니다. 단어 바타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라고 번역할 수가 있는 단어입니다. 아멘보다는 단계 성숙한 신앙을 말할 때에 바로 단어를 사용하지요.

 

12:4-5절에는 사실을 이렇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멘하면서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영접하게 되니 약속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행동, 순종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약속의 ,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대하고 가나안 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이주했지요. 주실 것을 하나님이 약속의 자손을 것을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약속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표 상으로는 25년후에 되어질 일이었거든요. 25년이면 강산이 번이나 변하고도 남는 오랜 시간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는 25년간이라는 긴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까? 시간이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니깐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약속 자체도 잊어 버릴 수가 있는 긴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후사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겨 놓았기에 약속을 잊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시길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믿음이 무슨 믿음이라고요? 절대 믿음입니다.

4:18-21<아브라함이 바랄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4:17 후반부<그의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위대한 신앙고백이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과 동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전 2천년경의 아브라함이 우리들이 믿는 그런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놀랍습니다.

 

절대 신앙은 아브라함이 25년간의 긴긴 기다림의 상황 속에 있었기에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25년간의 기다림이 없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순종하여서 들어가자 말자 후손을 주셨다면 그런 절대 믿음을 가질 없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절대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25년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탄식하는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그런 믿음이 만들어집니다. 25년간 아브라함이 후사를 주겠다는 약속을 일념으로 기다리면서도 실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실족은 믿음이 없어서 일어난 실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생겼지요. 처음에는 롯을 자기의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지요. 그런데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서 소돔 성으로 들어 버렸지요. 그러다가 자기 집에 길러온 신실한 ,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고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지요.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난 후손을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하시자, 사라가 자기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어서 이스마멜을 낳게 하자요. 그래서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몸에서, 그리고 사라의 몸에서 자식을 후계자로 세운다고 최종적으로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지요. 장장 25년간의 기다림 끝에 말입니다. 25년간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아브라함은 후계자를 세우고자 했지만, 그런 생각은 모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기반에 두고 했던 행동이지요. 

 

Impossible I’mpossible 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삶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통로가 무엇이라고요?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 절대 믿음입니다. 절대 믿음은 기적을 만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우리들의 사는 세상에는 기적이지만 세상에서는 일상일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실어 보십시다. 그러면 엄청난 기적들이 나의 속에 우후죽순처럼 경험되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약속을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후손을 준다는 약속을 25년만에 실현시켰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수많은 약속들을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약속은 성경말씀입니다. 수많은 약속들을 나를 위하여 속에 기록해 주었습니다. 성경말씀은 오늘 나를 위한 때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속을 아멘하면서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75 받았던 약속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삶을 풍성하게 만들 많은 약속들이 아직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약속들의 실현을 아브라함처럼 기다립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실현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게 것입니다. 그것의 실현을 목도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합니까? 연단된 절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속에서 연단된 절대 믿음은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나의 믿음의 크기만큼 내가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수가 있습니다. 추상적인 믿음, 상아탑 속에 갇혀 있는 믿음, 지적 동의에 불과한 믿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하신 약속들이 속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절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한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상황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는가 만을 보게 됩니다. 상황이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우리는 믿음으로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을 아브라함이 소유하고 있었고,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런 연단된 믿음을 가져야 겠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을 한번의 나의 믿음의 기도로 이루시지 않고 오래 기다리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랜 기다림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실수 때도 있지만, 오랜 기다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연단된 믿음인 절대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연단된 절대 믿음은 세상의 불신이 가득한 세상을 비추이는 찬연한 빛입니다. 당신은 이런 절대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보스톤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들이 켐연장 교회 안에  담고 신앙생활, 교회 생활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도 이곳에서 아브라함처럼 연단을 받아서 그런 절대 믿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둘째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있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그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막으시면 그것을 이룰 인생이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없으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도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절대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절대 믿음은 하늘에서 어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면 비로소 만들어 지는 믿음입니다. 비록 눈을 들어서 환경을 보면 이루어질 같아 보이지 않지만, 주께서 말씀하셨기에 주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당신은 보스톤에 살면서 어떤 약속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모든 약속은 성경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이제는 가슴 속에 새겨 놓으면서 약속이 내게 성취되도록 믿음으로 인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내게 절대 믿음도 이루어지고 또한 약속의 성취도 이루어져 있게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 먹고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성수

2018.09.09 23:04:03

2018년 9월 7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907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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