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지난번 전교인 수련회 조목사님이 야곱에 대하여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말씀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 시키고 전하신 말씀을 요약하면서 조금 보충해서 해설하겠습니다.

 

족장인 야곱의 삶의 스타일은 우리들의 삶의 스타일과 무척 닮았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성도의 평생이 보입니다. 성도의 평생은 중생-성화-영화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지요. 야곱의 일생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중생-성화-영화의 과정이 보입니다,.

 

야곱의 일생:중생-성화-영화

야곱의 일생에는 크게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벧엘-브니엘-애굽의 바로 앞에서! 벧엘 이전의 삶과 벧엘에서 브니엘까지의 , 그리고 브니엘에서 바로 앞까지의 삶으로 나눌 수가 있겠지요.

야곱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번의 변곡점을 경험합니다:신앙의 변곡점(=만곡점,전환점)! 그의 인생의 번의 변곡점에서 야곱은 신앙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벧엘에서, 그리고 어디? 브니엘에서!

벧엘과 브니엘의 경험 야곱에게 있어서 잊을 없는 경험이면서 사건입니다.

 

우선 벧엘 이전의 브엘세바에서의 야곱의 신앙은 우리들이 말하는 모태신앙입니다.

야곱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 이삭의 슬하에서 신앙교육을 받게 됩니다. 시기에 야곱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신앙생활하였습니다.

때의 야곱의 신앙은 오늘날 우리들의 용어로 이야기 한다면 그의 신앙은 그야말로 모태 신앙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신앙의 가문에서 배우고 익혀서 알고 있는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야곱이 어떻게 불렀습니까? 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삭이 섬기는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때의 야곱의 믿음을 하나님을 체험하여서 알게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교육을 받아서 알게 그런 하나님일 뿐입니다. 지성적인 이해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허약한 신앙이지요. 바람 불면 넘어 지고, 꺼질 밖에는 없는 그런 믿음입니다.

시기는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서 에서와 싸웠지요. 서로 먼저 태어나려고 말입니다. 먼저 태어나면 장자권과 축복권을 그냥 얻을 있기 때문이지요. 야곱이 간발의 차이로 에서에게 밀렸습니다. 1 라운드에서는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야곱이 성장한 후에 트릭을 써서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권과 축복권을 획득하게 되지요.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권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나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그것을 무척 얻고 싶었는데, 야곱은 둘째로 태어 났기 때문에 얻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하나님의 선물을 손에 넣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시기는 야곱에게 있어서는 청년기이었을 것입니다.

시기의 야곱의 신앙은 오늘 우리들의 모태신앙에 해당되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벧엘에서의 야곱은 어떤 믿음일까요?/중생체험.

 

도망자:야곱! 장자명분과 장자축복권 때문에 에서와의 갈등이 생겼고, 그래서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니 하란으로 도망을 가게 되지요.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게 되지요. 아마도 들판에서 노숙을 하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벧엘에서는 야곱의 무엇이 바뀌었나요?

벧엘에서 우선 무슨 일이 일어 났습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지요. 이제는 여호와께서 이삭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지요.

하나님 그분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으로 만남으로써 이루어지지요. 이것을 조우遭遇(우연히 서로 만남)! encounter라고 부르지요.

 

우선 fact체크부터 봅시다. 도망자가 되어서 아버지 곁을 떠나 외삼촌 하란의 집으로 도망을 가던 중에 벧엘에서 노숙을 하게 됩니다. 베개를 배고, 겉옷을 이불로 덮고 자던 중에 꿈을 꾸게 되지요. 꿈은 꿈이 아니라 신령한 꿈이었습니다. 속에서 사다리를 보았는데, 사다리가 위쪽 끝은 하늘에 닿았고, 아래쪽 끝은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 꿈에 야곱이 눈을 들어서 보니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고, 하늘에 닿아 있는 위쪽 끝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다리 위쪽 끝에 계시는 신비한 광경을 보게 되었지요.

사다리 위쪽 끝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인데, 조부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또한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야곱에게 야곱이 누워 있는 땅을 (가나안 , 팔레스타인 )야곱과 야곱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지요. 그리고 무슨 축복을 하나님이 하셨나요? 후손들이 땅의 티끌처럼 되어서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고 세상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야곱과 야곱의 후손들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지요. 약속들은 모두 그의 조부인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인데, 벧엘에서 야곱이 꾸고 있는 꿈에서 하나님이 확인하면서 야곱에게 컨펌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약속을 도망자인 야곱에게 우리 하나님이 주셨나요? 지금은 야곱이 도망자가 되어서 아비의 집에서 쫓겨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약속은 야곱에게는 아주 특별한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은 28: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땅으로 돌아 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정처 없는 도망자 신세인 야곱에게 이것보다 더욱 마음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없을 것입니다. 야곱아, 네가 아비 집을 떠나서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너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인도할 것이고 네가 가는 곳에는 나도 거기 있을 것이고 종래에는 너를 인도하여서 약속의 , 아비가 살고 있는 땅으로 돌아 오게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조금 전에 약속한 것을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것을 보스톤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내가 너를 이곳 보스톤 땅으로 보냈다. 내가 너에게 허락한 것을 보스톤 땅에서 성취할 때까지 너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 이런 약속의 말씀이 야곱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 없습니다.

 

보스톤 땅에서 내가 이루어 가고 있는 꿈은 나의 소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나의 비전입니다. 꿈은 거룩한 소원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소원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을 이루어 가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일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방해하지 말고 그냥 나를 열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막힘이 없이 역사하시도록 나는 방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하려고 주장할 때가 하나님을 방해하게 하는 때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의 꿈은 이제 도망자로서 타향살이의 시작점입니다. 그가 그의 타향살이를 언제 마칩니까? 20 후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다시 도망하여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 오지요. 20년간 타향살이하는 동안 그는 벧엘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타향살이에서 일어나는 설움과 눈물과 고난과 시련을 벧엘에서 받았던 말씀을 마음으로 새기면서 벧엘의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셨고, 그를 구원했습니다. 

 

과연 벧엘에서 야곱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까? 변화되어서 사람 야곱은 사라지고 사람 야곱이 되었습니까? 아니지요.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확실하게 만났습니다. 이런 만남을 통하여 그의 무엇이 변화되었을까요? 단지 그의 영이 변하였습니다.그러나 아직 삶은 이전 그대로였습니다. 삶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변화된 것은 오직 그의 영입니다.   멀리 3인칭으로 그의 뇌리에 존재하던 하나님이 이제는 나와 당신의 관계로 1:1 대면하여서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중생이라고 부르지요. 벧엘에서 야곱은 중생했습니다. 자기 밖에 계시는 하나님을 영과 영으로 만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조부,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 이심을 알았습니다. 영이 변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삶의 영역에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인 영이 변화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삶의 방식은 여전히 브엘세바에서 살던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야 말로 머리 회전이 빠른 인물입니다. 그런 머리 회전 잘되는 라반보다 위에 서서 20년간 라반의 것을 교묘하게 합법적으로 빼앗아서 야곱은 부자가 되지요. 야곱은 소떼와 양떼를 리빈보다 많이 가질 있었습니다. 부인 명을 얻었고, 자식들을 12이나 낳았습니다.  합밥적이었기 때문에 라반이 트집을 잡을 없었습니다. 라반은 튀는 사람이었고, 그러나 야곱은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팡이 하나와 주먹을 가지고 요단을 건넜지만, 그는 라반의 집에 있던 20 동안 재산을 모을 있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삶은 영은 변화 되어 새사람이 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신앙인을 무슨 신앙인이라고 부릅니까?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을 했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왕좌에 모시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왕좌에는 자신이 앉아서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삶을 사는 신앙인들을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일지라도 분들은 확실히 예수를 만난 분들입니다. 비록 세상 가운데 살면서 예수 냄새를 내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자신의 심령에 영접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분들도 세상을 떠날 때는 우리 주님 계시는 천국에 확실하게 들어 갑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이후의 삶에서 결코 잊지를 않았습니다.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올리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특별히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란에서 외삼촌 집에서 얹혀 사는 동안에도 힘들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 벧엘의 하나님을 찾았고 벧엘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면서 승리할 있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자기의 머리로 살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그런 삶을 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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